“선생님들, 안녕하세요. 시간이 너무 휙휙 지나가네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과 상관없이 올해도 독립출판 모임을 합니다.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언제 풀릴지 알 수 없지만, 3월에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불가능하다면, 온라인으로 모임을 시작해야겠지요. 작년에는 ‘내 글에 날개를 달다’였지요. 올해는 ‘서점에서 내 책을 만나는 기쁨’으로 해볼까 합니다. 올해 독립출판을 하려는 선생님들 신청해 주세요.”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 배지영씨의 문자였다.
기쁨이란 단어를 보는 순간 고전 중 공부의 즐거움을 말한 《논어》의 첫머리가 생각났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가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공부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얘기하면서 이 문구를 말해준다. 세상에 기쁨을 주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공부하는 것이 으뜸이냐고 묻는다면, 거꾸로 반문하며 학생들에게 지식과 지혜의 필요성을 전해준다. ‘얼마나 좋은 것이길래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공부처럼 즐거운 것이 없고 기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겠냐고.’
코로나위기로 인해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피해를 IMF시절과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당시 경제 현장에 있었던 40대 이상의 사람들, 특히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의 체감도는 남달라서 그들의 걱정소리를 듣고 있자면 자영업(학원운영)을 하는 나도 역시 쌓이는 것은 걱정뿐이다. 다행히도 마음에 늘 위안과 희망을 담고 살만한 세상이라고 나를 격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 힘든 것은 아니야. 더 좋아질 일만 남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울 때 함께 걱정하고 함께 즐거운 방법을 찾아야지.’
노년을 준비하는 나의 삶에 엄청난 기쁨을 안겨준 것이 바로 글쓰기 생활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의 실체가 역설적이게도 내 삶의 명암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해주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한 이치이다. 책 출판 역시 혼자라면 못할 것을 함께여서 해냈다. 작년 가을 시월의 마지막 밤에 지역작가들이 소소한 책 한 권씩을 내면서 각자 자신의 글에 날개를 달았었다. 그날 펴진 날개가 아직도 동력을 받고 하늘에서 선회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비록 그 비상의 힘을 지탱하는 시동소리가 고양이 가르릉 거리는 소리 만큼으로 약해졌을지라도.
이런 시점에 상주작가 배지영씨의 메시지는 주춤거리고 있던 내 글쓰기 기차의 동력이 되었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일단 작가의 강단있는 목소리가 들리면 왠지 긴장한다. 한해 한해 지날수록 ‘라떼는 말이야’라든지, ‘내가 나이를 먹어봐서’라든지 하는 무채색 모드에 걸려 대강대강 살려고 한다. 그러다가 젊고 패기에 찬 누군가의 당금질을 들으며 긴장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존재의 의미를 건드려 준 것 같아서 고맙기만 하다.
그래, 이제 슬슬 두 번째 책 출간의 출발선에 서보자 하는 맘으로 기상 시간을 당겼다. 첫 번째 책을 펴낸 이후 간간히 써 놓았던 글감들을 한 공간으로 모으고, 주제별로 다시 재배치 해놓았다. 그런데 마음이 가는 글감이 없으니, 주제니 목차 등, 해야 할 사전작업에 진척이 없었다. 추진력 상급인 상주작가가 곧 소환령을 내릴텐데, 걱정만 앞서고 글은 들어오지 않았다. ‘신청하세요’라는 말에 제일 먼저 댓글이나 달지 말 것을. 그 후회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상주작가의 메시지가 울렸다. 물론 이 거 말고도 서너차례 계속 울렸다.
“선생님들, 저녁 식사 하셨습니까? 책을 출간해 본 선생님들은 크게 술렁이지 않는데, 신입 선생님들은 걱정하는 게 보입니다. 서점에 가서 쓰고 싶은 분야의 책을 살펴보세요. 이거다 싶은 책은 사서 목차 부분을 연구하세요. 그러면 어떻게 쓸지 보일 거예요.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을 쓸 때 저는 목차부터 정하고 썼습니다. 물론, 목차대로 되지 않지요. 하지만 그게 있어야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원래의 주제에 맞는 책을 쓸 수 있습니다.”
책 한 권 출간해 봤다고 내 글에 맞는 목차와 주제를 이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써 놓고도 이게 무슨 말인지, 어디로 가는 길인지를 모르는 글이 가득하니 정말 걱정만 앞섰다. 잠시 눈을 감고 있으니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 떠올랐다. 몇 해 전인가, 한 지인이 나의 봉사활동과 학생들을 위한 진로코칭을 보면서
"선생님은 꼭 정호승 시인의 봄길에 나오는 사람 같아요.”라고 했다.
그 뒤로 그 시가 그렇게 좋았다. 봄뿐만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길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새로운 길도 만들고, 익숙한 길은 더 편안하게 만들어서 너도 나도 모두 다닐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 약속과 다짐은 해마다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내 글쓰기에 봄길을 만들어주고 있는 사람, 배지영 작가의 말을 잘 들어야겠다. 책에 대한 여러가지 길을 들려주며 글쓰기를 독려하는 그녀의 ‘쪼는’ 마음을 고맙게 받고 닮아야겠다. 그러다보면 그녀가 만든 봄길을 밟고 한 발을 내딘 내 발자욱에 시동이 걸려서 10월의 어느 날 또 출간회라는 무대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서점에서 내 책을 만나는 기쁨’이라는 글귀가 써진 플래카드 옆에 서서 다시한번 지역작가 라는 호칭을 듣고 싶어 할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참 행복하고 기쁜 일이니 어찌 글 공부의 즐거움을 말한 <논어>의 구절이 생각나지 않을 것인가.
오늘은 학원의 부모님들에게 3월의 편지를 보냈다. 학원운영 18년차, 매달 편지를 썼으니 200여통 이상의 편지가 배달되었을 것이다. 학부모도 읽고 학원생도 읽으니 내 편지의 독자 수도 가히 적지 않다. 매달 편지를 기다린다는 소리를 들으면 더욱더 정성이 가세된다. 항상 새 달을 맞는 인사말부터 한 달이 끝날 때까지 지켜야 할 약속에 이르기까지, 또 종종 해당 달에 어울리는 시 한편을 옮기면서 글에 나의 낭송까지 덧붙여서 발송한다. 글도 쌓이고 마음도 쌓이는 이 행위는 학원 운영에서 자긍심을 느끼는 큰 기쁨이다.
두 번째 책의 주제는 바로 ‘일상을 변화시키는 누적의 힘’에 대한 이야기다.
소위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특별한 재주도 없는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을 말하라고 한다면 오로지 하나!
바로 “꾸준함과 책임감으로 무장된 소소한 일상의 누적과 그 힘을 활용하는 것‘이다.
모쪼록 내 글이 주는 누적의 힘이 절망에 빠진 이에게 희망이 되고 갈길을 헤매는 이에게 푸르고 따뜻한 봄길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