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13 안도현 <오월편지>
글씨앗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중한 씨앗이 말씨앗이 아닌가 싶은데요. 글은 흔적이라도 남아서 잘못된 것을 고칠 수라도 있지요. 말은 한번 입 밖에 나오는 순간 땅에 떨어졌는지, 허공으로 날아갔는지, 아님 누군가의 가슴속에 콕 하고 뿌리내렸는지,,,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이왕이면 거짓이 아닌 이상, 좋은 말만 하고 살아도 모자란 삶이라고 하겠지요.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작가의 다른 책 <말의 품격>에서 나온 표현 중, ‘말은 인향(人香)을 담고 있다’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어제 중 3 학생들에게 영어독해 중 말의 중요성에 대한 부분을 설명하면서, 무심코 내뱉은 말이 얼마나 큰 상처로 남는지를 말했습니다. 요즘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말의 수위가 지나치게 폭력적인데도, 모두가 장난이라고 넘어가는 일이 부지기수... 정말 심각한 사회적 교육적 문제 중 하나입니다.
잠깐사이 학생들에게 특별한 옛 문장으로 알려줄까 하고, 말조심에 관한 고사성어를 찾아봤는데요, 구화지문(口禍之門)이랄지, 설참신도(舌斬身刀), 반수불수(反水不收), 이런 표현들이 낯익더군요. 물론 학생들은 한자가 더 어렵다고 웅웅 거리며 한참 소란스러웠지만, 제가 풀이해 주는 뜻을 듣고 고개를 끄떡이긴 했어요... 또 한자어는 몰라도, 우리 얼굴에 있는 감각 기관 중 오로지 입만 하나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지 라며, 말의 중요성을 맺었답니다.
우리는 말하지 않고 살 수 없는 존재들... 오늘도 만나는 누군가와 말의 향기를 나눌 수 있길, 기대하면서, 이왕이면 ‘입구(口)’자 세 개가 모여 만들어진 ‘품(品)‘의 세상이 정말 ’ 격(格)’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하루가 되겠습니다. 안도현시인의 <오월 편지(便紙)> 들려드릴게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오월 편지(便紙) - 안도현
붓꽃이 핀 교정에서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떠나고 없는 하루 이틀은 한 달 두 달처럼 긴데
당신으로 인해 비어 있는 자리마다 깊디 깊은 침묵이 앉습니다
낮에도 뻐꾸기 울고 찔레가 피는 오월입니다
당신있는 그곳에도 봄이면 꽃이 핍니까
꽃이 지고 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며 찔레가 피는 철이면
더욱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며 찔레가 피는 철이면
더욱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다 그러하겠지만
오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땅에선
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