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래미도 춤추게 하는 벚꽃잎
2021.4.3 엄마와 벚꽃잎 아래서
“해마다 봄이 오면 저렇게 늙은 나무에도 꽃이 피고 잎이 나는데, 사람만 늙어가는구나. 나이 70이면 70킬로로 달리고 80이면 80킬로로 달린다고 하더니 정말 세월이 어찌이리 빠르다냐.”
벚꽃이 만발한 동네길을 운전하며 친정엄마와 수영장으로 향했다. 엄마나이 오십대를 회상해보면 지금의 내 몸매보다 훨씬 날씬했고 타고난 하얀 피부와 큰 키는 어디서나 돋보이는 외모였다. 고향섬으로 귀향한 후 매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3톤짜리 도톨이만한 통발배를 타고 활어를 잡는 어부마님이 되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20여년 정도 안강망선단 이라는 100톤급 배의 안주인이었으니, 3톤짜리는 엄마 혼자서도 출렁거릴 정도로 작은배였다.
그 배의 이름은 ‘신아호’였다. 한자를 본적은 없지만 ‘나를 믿어라’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15년 정도, 신아호는 부모님이 노년으로 들어가는 첫 도착지이자 마지막 종착지가 되었다. 큰 배를 운영할 때는 ‘여자가 배에 타면 불운이 온다’고 하는 미신이 있었다. 엄마 역시 아빠의 배에 올라간 적이 없었는데, 조각배를 타고 두 분이 함께 15년동안 아침을 열고 밤을 닫았으니, 얼마나 추억할 거리가 많겠는가.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 새벽마다 네 아버지 깨워서 바다에 나갈 때는 어린애 달래듯 하면서 나가도, 막상 바다를 보면 네 아버지는 자유롭게 날아가는 갈매기랑 천생연분이더라. 시원하고 넓은 바다를 보면서, 동쪽에서는 붉은 해가 솟고, 걷어올린 통발에선 팔둑만한 놀래미나 우럭이 팔닥거리는 것을 보면 그 말없는 양반이 웃는 모습만으로 내 하루가 행복했다.”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은 군산의 벚꽃이 가장 많은 운동장에 위치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해마다 벚꽃 축제라는 이름으로 한바탕 시끌벅적하게 시민들이 봄을 즐겼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3월 말부터 4월 초순까지, 약 2주간 군산은 온통 벚꽃들의 아우성으로 가득하다. 올해는 예년보다 봄비가 주간 단위로 오더니 벚나무에 꽃망울 맺히기도 빠르고, 만개도 빨랐다. 세상살이 빠른 것이 능사더냐. 빨리 피는 꽃이 빨리지니, 나의 마음도 바빠졌다. 그러나 흩날리는 벚꽃잎 비는 이내 오감을 녹여주는 활성비타민제 같이 내 몸에 퍼졌다.
이 비타민을 당연히 혼자 먹을 수 없지. 엄마에게도 드려야지 하는 맘으로 벚꽃나무 가까이에 차를 댔다.
“엄마, 진짜, 이쁘네요. 벚꽃피면 생각나는거 있으세요? 아빠생각?”
“이 때쯤에는 우리 신아호 통발에 든 놀래미가 최고로 값이 많이 나갔다. 한달 정도 투망질 하면 그래도 너희들한테 손 안 벌리고, 싱싱한 회도 먹고, 이집저집 나누기도 했는디. 네 아버지 없고 쬐깐 조각배도 없으니, 그나마 놀래미회 구경도 못하네.”
“그렇네!!. 나도 놀래미회 먹고싶당. 수산시장이라도 가서 사 드시게요. 놀래미는 성질이 급해서 빨리 죽는다면서요. 이때 아니면 먹지도 못하겠네요. 그리고 은파나 월명산 벚꽃구경도 가시게요.”
벚꽃을 바라보는 엄마의 상념어린 눈길에서 세월의 회한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그사이 나는 벚나무의 이곳저곳을 사진에 담았다. 마침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내려와 꽃잎에 앉으니, 나무 밑둥에서 위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렌즈는 눈부신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을 감아버렸다.
첫 에세이집 <어부마님 울어마>를 출간했을 때, 엄마는 당신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것에 대해 나는 나름 걱정이 들었다. 혹시나 엄마의 맘을 상하게 하는 대목이 있을까봐. 사실 엄마가 책을 다 읽을 정도로 탐독심이 강하지도 않다. 엄마의 눈길을 끈 것은 손녀딸이 그려준 그림과 그림에 대한 해설을 읽는 정도였다. 문해력과 책을 읽는 끈기를 평가하자면 울 엄마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덮고도 남을 만한 엄마의 표현 구사력은 언제나 내 글을 적셔주는 샘물과 같다. 특히 섬 사람들만의 공용어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니 보배로울 수 밖에 없다. 언젠가 때가 된다면, 엄마 고향섬의 유서깊은 말들을 다 모아서 글 모음집을 만들고 싶다.
50대를 가르켜 지천명의 나이라고 하지만, 난 하늘의 뜻을 알기보다는 엄마의 뜻과 마음을 알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사람이 곧 세상이고 세상이 곧 하늘이니 내 부모 형제를 먼저 알아가는 이치야말로 인간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싶다. 엄마의 인생속도가 80으로 과속을 찍으려해도, 딸의 인생속도가 제어장치를 해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새로 이사한 텃밭으로 갔다. 정육점을 하면서 엄마를 지척에서 모시는 막내동생의 부탁으로 대파를 한 두둑이나 심었다. 가게에 온 손님들에게 써비스로 주는 대파가 해마나 여름이면 고가행진이어서 이번에는 내 손으로 직접 공수하겠다고 약속했다.
효자아들이 쓰겠다는 대파밭이라고 설명하니 엄마 눈길이 더 따뜻해 보였다.
주말인 오늘 또 비가 내린다. 떨어지는 벚꽃이 안스러우니, 괜시리 눈물이 난다. 엄마와 함께 엄마의 50대를 추억하던 벚꽃과 놀래미 얘기를 이 꽃잎들은 다 알아들었을텐데. 우리 모녀의 4월을 오래토록 기억하라고 좀 더 나무에 달려 있게 해두지 어찌 무정하게 봄비는 또 오는지.
이 비 그치면 어부마님이 먹고 싶어하던 놀래미들도 꽃잎따라 다 가버릴 것을.
마음이 심드렁하여 오늘의 시 필사로 벚꽃에 대한 시를 찾아보았다. 처음 읽는 시인데 내 맘에 콕 들어앉아 떠날 줄을 모른다. 단지 윤중로의 벚꽃 잎을 군산의 벚꽃 잎으로 바꾸련다.
벚꽃이 감기 들겠네 - 김영월
비가 그친 저녁
더 어두워지는 하늘가
이 쌀쌀한 바람에
여린 꽃망울들이 어쩌지 못하고
그만 감기 들겠네.
그 겨울지나 겨우 꽃눈이 트이고
가슴 설레는데
아무도 보는 이 없고
꽃샘추위만 달려드네
우리가 꿈꾸던 세상은
이게 아니었네.
좀 더 따스하고 다정하길 바랬네.
윤중로 벚꽃 잎은 바람에 휘날려
여의도 샛강으로 떨어지고
공공근로자 아주머니의
좁은 어깨 위에 몸을 눕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