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55

2025.6.12 황인숙 <간발>

by 박모니카

갑자기 이런 동요가 생각나네요. ’ 시계는 아침부터 똑딱똑딱... 언제나 같은 소리 똑딱똑딱 부지런히 일해요 ‘ 눈을 뜨면 같은 숫자를 가르치는 시계바늘, 마치 제가 시계처럼 느껴지면서 머릿속에 울리는 노래가사 말. 습관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든 아니든 참 무서운 거구나 싶네요. 항상 몸에 달고 있는 그림자보다 더 독한 동행자, ’ 습관‘에게서 마저도 독립된 주체자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옵니다.


시계의 태엽마저도 ’벌써 목요일?‘이라며 저 만큼이나 놀랄 듯, 왜 이렇게 시간이 빠른지요... 새 달이 시작할 때마다 다짐하는 일, ’ 이번 달은 느긋하게 얼굴 보며 음악도 듣고 바람도 만지고 차 한잔 건넬 여유를 많이 가져야지 ‘ 하는 생각들은 말 그대로 생각에 머물 때가 많아서 조금은 부끄러워지네요. 그나마 이렇게 편지 쓰는 시간마저 없었다면, 이 때는 음악이라도 들을 수 있으니(지금은 히사이시조의 영화음악 피아노 연주를 듣는 중) 천만다행!!


요즘 야밤 수업 후 달밤에 걷기를 하고 있는데요, 혼자 하다 보니 살짝 무섭기는 해도, 누구의 농담처럼, ’ 당신이 더 무서워^^‘를 되뇌며 씩씩하게 슬로조깅을 하고 들어옵니다. 첫 발자국은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는데, 한 발을 떼기만 하면 어느새 온몸에 달빛이 내려앉아서 몸도 마음도 부드럽고 가볍게 만들어주네요. 확실히 늙어가면서 겁도 사라지고, 만사에 초연하게 살라고 준비해 둔 마음주머니는 부풀어지는 듯합니다. 잠 잘 자는 것이 최고의 다이어트라고 말하는 의사를 지침서를 떠올리다가 잠이 들었네요.

오늘도 전주에서는 황인숙 시인의 특강이 있는데,,, 학원일이 많아져서 부득이 결석. 제 나름 일주일에 한 번씩 바람 쐬러 나가는 전주행인데, 아쉽게도 꼼짝 못 해요. 어제 텃밭에서 만난 열매들의 사진을 보며, 오늘 지인들에게 나눠줘야지 라고 맘을 돌리니, 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군요. 황시인의 시 한 편, <간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간발 – 황인숙

앞자리에 흘린 지갑을 싣고

막 떠나간 택시

오늘따라 지갑이 두둑도 했지

애가 타네, 애가 타

당첨 번호에서 하나씩

많거나 적은 내 로또의 숫자들


간발의 차이 중요하여라

시가 되는지 안되는지도 간발의 차이

간발의 차이로 말이 많아지고, 할 말이 없어지고


떠올렸던 시상이 간발 차이로 날아가고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고

길을 놓치고 날짜를 놓치고 사람을 놓치고


간발의 차이로 슬픔을 놓치고

슬픔을 표할 타이밍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네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뺨을 푸들거리며

놓친 건 죄다 간발의 차이인 것 같지

누군가 써버린 지 오랜

탐스런 비유도 간발로 놓친 것 같지

간발의 차이에 놓치기만 했을까

잡기도 했겠지, 생기기도 했겠지

간발의 차이로 내 목숨 태어나고

숱한 간발 차이로 지금 내가 이러고 있겠지

간발의 차이로

손수건을 적시고, 팬티를 적시고

6.12간발4.jpg

6.12 간발1.jpg
6.12간발2.jpg
6.12간발3.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