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11 정호승 <가시>
하루를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그 하루가 참 아름답다 ‘라고 느낄 때는 비단 풍요로운 시간과 자연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독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사람과의 관계가 제 하루의 완성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지요. 특히 만난 사람의 수가 많은 날일수록, 잠들기 전에 주고받았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재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편입니다. 그때 가장 효율적인 평가도구로 작동하는 것이 고전책입니다.
아침에 만난 한 지인과의 관계의 창문이 스스로 열리더니, 하루 종일, 기분 좋은 만남으로 늦은 저녁 학원일을 마무리했지요. 그 와중에 ’ 동양고전특강‘ 줌 수업을 들으면서요. 마치 대학 1학년때 교양과목으로 선택했었던 인문학강의를 듣는 듯, 오랜만에 판서하는 모습의 교수님 강의에 귀 기울였습니다. 논어만 1천 독 이상을 하셨어도 정확한 해석에 변수가 있다 하시니, 저도 최소 10독은 해볼까 하는 굵은 다짐이 쑥 하고 올라오는 즐거운 시간. 오로지 ’ 공자님 호학(好學)‘의 즐거움을 따라가다 보면, 최소한 인간임을 증명하는 ’ 효(孝), 예(禮), 그리고 인(仁)‘의 정신을 만 분의 일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지요.
며칠 전 우연히 발견한 빨간 고춧가루... 2년 전 제가 심은 고추를 따서 건조기에 말려서 가루를 만들어야지 했던 그 고추를 이제야 다시 보았지요. 색 바랜 고추를 버리기는 너무 아까워, 어떡할까를 고민하던 중, 생각난 지인!! 그분은 궂은일에도 만능해결사 같이 저의 고민을 덜어주시고, 늘 희망 어린 조언을 해주십니다. 어제는 물김치를 담아서 나누자고, 그 고추를 바로 고운 물 가루로 만들어서 주시고, 한 술 더 떠서, 오징어, 새우가, 솔이 들어간 부침개를 즉석에서 만들어 점심까지 주셨습니다. 공자의 제자 증자가 말한 이 대목을 생각나게 하는 지인께 감사드립니다.
증자왈 ’吾日三省吾身(오일삼성오신)‘하노니,
爲人謀而不忠乎(위인모이불충호)아 與朋友交而不信乎(여붕우교이불신호)아 傳不習乎(전불습호)
아니라 (학이-4)
증자가 말하길,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피니,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하면서 충성스럽지 아니한가, 벗과 더불어 사귀면서 신실하지 아니한가, (스승에게)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못하였는가.”
밤 산책길에서 만난 달무리와 장미의 밀어를 훔쳐 듣다가, 사진에 담으면서 비가 오길 기대했건만... 오늘도 비 소식이 없어, 텃밭의 생명들에게 수작업 물동량을 주러 가야겠어요. 심어놓은 모종들이 얼마나 잘 크고 있는지... 오늘은 정호승시인의 <가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시 – 정호승
지은 죄가 많아 흠뻑 비를 맞고 봉은사에 갔더니
내 몸에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손등에는 채송화가 무릎에는 제비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야윈 내 젖가슴에는 장미가 피어나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토록 가시 많은 나무에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고
장미는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가시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라고
가장 날카로운 가시에서
가장 멀리 가는 향기가 난다고
장미는 시들지도 않고 자꾸자꾸 피어나
나는 봉은사 대웅전 처마 밑에 앉아
평생토록 내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를 힘껏 뽑아내려고 하다가
슬며시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