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60

2025.6.17 윤동주 <길>

by 박모니카

코 끝에 스치는 들깨잎 향기, 온종일 노동과 언사로 축 처진 제 맘에 다가와 비타민 담긴 스프레이병처럼 뿌려지더군요. 그 어떤 향수보다도 향기로워 한참 동안 코 끝을 물들였습니다. 하여튼 월요일은 쉽지 않은 날... 그래도 늦은 밤까지, 아들과 먹을 음식 몇 가지 준비하는 제 손길은 흥얼거리는 장단 위에서 놀았답니다. 오늘은 다소 성근날이 될까요. 하늘의 성근 그물아래 누워 멀똥멀똥 아무 일도 안 하지만 행복이 온 몸으로 퍼지는 그런 시간을 만들어 봐야겠습니다.


온택트수업에서 윤동주시인을 만나고 있는데요. 지인이 영화 <동주>를 추천하길래 보았지요. 담채화 같은 영화분위기에 수묵을 들고 시를 노래하고픈 동주시인의 삶이 잘 표현되었습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시인의 주요 시를 읽는 내레이터의 목소리는 동주시인의 시대적 고뇌와 아픔을 잘 전달해 주고요. 지극히 소극적으로 보이는 시인의 행동 속에 시를 통해서라도 나라 잃은 절망에만 머물지 않고 다가올 희망을 위한 붓끝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적극성을 잘 묘사한 영화였습니다. 비가 오는 저녁 고요히 커피 한잔 들고 시청하면 좋은 멋진 영화!!


누군가는 제게 묻지요. 그 많은 일을 하면서 언제 산책을 하고 영화도 보고 책도 보는, 시간의 마법사 같다고요. 심지어 책방 옆 마술사가 살아서 특별히 배운 비법이 있느냐는 질문도 하더군요. ‘그 마술사가 저한테 와서 시간을 늘렸다 줄였다 하는 마법을 배워야 될 텐데요’라는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어제처럼 파김치가 되는 날도 있더라도,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에 단 10분이라도 저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그 시간은 제 맘을 알고 토닥여줍니다. 다음날의 즐거움을 약속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니 오늘도 아마 즐거운 어떤 일이 있을 거예요. 아직은 보이지 않고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이 이 아침의 답장 너머에 분명 있을 테지요. 윤동주시인의 <길>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길 –윤동주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어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어

길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츰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츰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처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프름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길을 걷는것은

담저쪽에 내가 남어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것은、 다만、

잃은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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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도서관 앞 수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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