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9.26 안도현 <일기>
그래도 남은 9월 자락이 휘날리는데 자꾸 가버렸다고 운운하니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지요. 매일 편지에 쌓이는 ‘하루’라는 날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함께 호흡하고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다 보니, 날짜의 변화에 저만큼 민감한 사람도 없을 듯하군요. 하여튼 오늘은 9월의 마지막 금요일, 한 주간의 분주함이 접히며 고요한 시간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요일입니다.
말랭이마을 입주 후, ‘골목잔치’를 기획하여 년간 7-8회 정도의 행사가 있었는데요. 올해는 연초부터 마을의 보수 공사를 한다는 이유로 미루더니, 급기야 상반기를 넘겼지요. 무슨 행사든지 규칙성을 가지고 꾸준한 모습으로 사람을 만나야 빛이 나는 법이죠. 그래도 한 해가 지나가는 이 마당에 아쉬웠던지, 골목잔치 행사를 하네요. 마을에 새로 입주한 작가들에게는 처음 열리는 행사라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인형극, 마술, 동화구연, 도예 및 자수체험, 그림 그리기, 시화판 만들기 등등...
솔직한 맘으로는 이 가을 9월의 마지막 토요일만큼은 어디론가 멀리 떠나 떨어지는 잎의 하소연이라도 들어보고 싶은데, 명색이 마을일이라, 불참할 수도 없지요. 마을 어머님들도, 시 관계자들도, 새로운 입주작가들도, 올해 첫 행사를 기다리며 마을에 새로운 기운이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인지라... 이렇게 홍보하고요, 더불어 여러분들께서도 널리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어제는 전주 인문학 특강에서 안도현 시인의 얘기를 듣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사실 올해도 제 나름 부지런히 다니며, 귀동냥하고 있지요. 여력이 닿는다면 책방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인연을 쌓아 시인들을 모시기도 하려는 마음에서요. 이 목요특강만 해도 어제까지 10명의 시인들이 다녀가셨어요. 1회, 황동규시인과 2회, 천양희 시인을 비롯해서 만나보고 싶었던 여러 시인들의 얘기를 듣는 재미가 좋았습니다.
요즘은 무슨 행사든지, 사람 모으기가 힘들지요. 아무리 좋은 행사를 기획해도, 너무도 바쁜 세상이라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이 기꺼운 맘으로 행사장에 가기까지는 상당한 수고가 필요하고요. 그래서 맘먹고 간 걸음에 뭔가 하나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 어제도 그런 마음으로 바쁜 지인들과 안도현 시인의 특강에 갔었습니다. 함께 간 문우들에게 도움이 되었을지 어떨지,,, 제가 주관하는 행사도 아니지만 그런 부분까지 고민했습니다.
안도현 시인이야, 워낙 유명시인이라서 대중강연도 많이 하십니다. 어제의 말씀도 영상으로 올라오는 자료에 다를 바 없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시를 쓴 시인을 직접 만나는 시간들은 분명 다름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제 특강 가기 전 책방에 오신 어떤 분에게 안도현시인의 <가을 낙엽> 일부를 들려준 것처럼, 이 가을에 시를 읽게 하는 고리, 시인과의 만남은 ‘시와 연애하다’라는 행사명과 같은 느낌이지요. 오랜만에 안도현 시인의 <일기>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일기 - 안도현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 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醫員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