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194

2025.10.29 이해인 <10월 엽서>

by 박모니카

등고자비(登高自卑)라,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해야 하고, 먼 길을 가려면 가까운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모든 일은 순서대로 해야 함을 이를 때 쓰는 말이지요. 중용에 쓰여 있기도 하지만, 얼마 전 한 지인께서 들려주신 말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그만큼 해야 할 일이 첩첩히 쌓여있어, 머릿속에 일 지도표를 만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날이 점점 차가워져서 그런지, 머리회전도 빠르지 않는군요.^^ 멀티탭처럼 움직여도 부족한데, 가끔 전원 하나를 꺼 놓고, 왜 안 돌아가지? 라며 궁시렁거리기도 하고요. 어제도 11월을 맞이하는 학원편지글을 학부모에게 보내면서, 달력을 들추어보았습니다. 참, 일도 많았고, 사건도 많았구나... 그러나 가장 다행스러운 것은 자잘한 사고 하나 없이 학원생들과 살아왔다는 사실이 무척 고마웠어요. 하룻사이에 벽에 걸린 온풍기를 보면서 모르는 체하지 않고 ‘와, 겨울이네’라고 말하는 학생도 예뻐 보였고요.


저의 빼곡한 일상을 부드럽게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 중에, 말랭이 책방매니저도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이직하지요. 사실, 경제적 도움도 못 드리는 책방살림이라 강하게 붙잡지도 못하지만, 서운하고, 고맙기는 말도 다 표현할 수 없지요. 일도 잘하시지만, 제 마음을 언제나 편안하게 해 주신,,,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0월의 마지막 주간을 보내면서, 내년 달력(가족달력, 책방달력)을 제작해야겠다 생각합니다... 특히 가족달력은 코로나 이후 해마다 만들고 있어서 동생들이 내심 기다리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가족들의 모습과 마음이 기록으로 남겨져서 이 또한 귀중한 재산이 되고 있네요. 또 이번에는 봄날의 산책 책방달력도 하나 만들어서, 새로운 마음을 새롭게 전달하는 의지를 불태워야겠다 싶어요. 그러려면 돈도 많이 벌어야 할 텐데... 소위 요즘 주식시장 5000 고지에 저도 동참해 볼까요?? ^^


하지만, 얼마 전 대학생 딸이 제게 전해준 얘기가 떠오릅니다. ‘땀의 가치를 진정으로 배우는 청년들이었으면 좋겠다. 삶의 근본에 땀 흘려보는 노동의 형태가 소중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며 동 세대인데도, 허황한 꿈만 쫓아가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걱정이라며, 저보다 더 나이 먹은 어른처럼 얘기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제 딸을 시대의 트렌드열차에 강제편승시키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이해인시인의 <10월 엽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10월 엽서 – 이해인


사랑한다는 말 대신

잘 익은 석류를 쪼개 드릴게요

좋아한다는 말 대신

탄탄한 단감 하나 드리고

기도한다는 말 대신

탱자의 향기를 드릴게요

푸른 하늘이 담겨서

더욱 투명해진 내 마음

붉은 단풍에 물들어

더욱 따뜻해진 내 마음

우표 없이 부칠 테니

알아서 가져가실래요?

서먹했던 이들끼리도

정다운 벗이 될 것만 같은

눈부시게 고운 10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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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늦가을2.jpg
10.29늦가을3.jpg 말랭이마을 정자에서 내려다 본 늦가을 금강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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