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41

2025.12.15 김영춘 <어느 날>

by 박모니카

20년을 넘게 알고 지내오는 남편의 후배는 저에 대한 호칭이 다양하지요. 원장님, 형수님, 선생님 했다가 때로 ‘사모님’(?). 남편이 미우면 시집도 밉다하더니, 어제 폭발해야 할 감정을 참느라고 속이 다 쓰릴 정도였는데,,, 남편 후배가 ‘사모님’이란 호칭을 하길래, 결국 엉뚱한 방향으로 제 말이 흘러갔지요. ‘내가 그런 호칭 들을만하게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이던가. 내가 옷하나 신발하나 사치를 부린 적이 없이 살았는데, 나는 그런 말 듣는 거 싫어하니까 아예 부르질 말던가요.’ 후배의 넉넉한 웃음으로 넘겼지만 아직도 화의 불씨는 남아서 아침을 밝힙니다.


감정이란 이성과 한 몸이라는데, 감정대로 움직이면 이성이 마비될까 두려워서 참고 또 참는 연습을 많이 하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이 들수록 몸으로 신호가 온다는 거지요. 밤새 머리가 웅웅 거리고, 속이 불편해서 쓰린 물이 흘러가는 듯하고요. 이럴 땐, 모든 걸 덮고 바닷가 어느 마을에 가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면 좋겠다 싶군요. 그런데 또다시 월요일을 맞는군요....


2025년, 이 나라에도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있겠지만, 저도 역시 오래 기억될 책방오픈부터 다사다난 이란 말을 쓸 정도의 일들이 있었기에. 정리할 것도 챙겨야 하고, 세워야 할 것도 준비해야 되고. 머릿속에 담기는 수많은 생각들을 순차적으로 번호를 매기기에도 빠듯한 시간들인데, 가끔 체인에 걸림돌이 하나 생기면 모든 것을 놓아버리자 라는 못된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그래도 딱 10초만 눈을 감고 숨을 멈추면 저를 위로하며 모아지는 또 다른 감정들. 그 속에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보여서, 살짝쿵 눈물이 맺히기도 한답니다. 오늘 혹시 저처럼 감정의 소용돌이가 당신을 지배한다면, 딱 10초만 눈을 감고 가장 가까운 그 누군가를 떠올려보시길. 그러면 달콤 고소한 카페라테 한잔을 마시고 있는 위장이 부드럽게 미소를 보내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오늘도 잘 살아보시게요. 김영춘시인의 <어느 날>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어느 날 – 김영춘

여기는 비가 온다고 말했더니

어떻게 비가 오는데요?

전화기를 따라 빗소리를 타고 물어온다

어떻게 비가 오는데요?

사람끼리 나누는 이런 말은 정말 얼마만인지

싱그럽기 짝이 없다

이미 돌이 된 인간의 고집마저 녹이고

예순도 훨씬 지난 몸뚱이까지 나긋나긋하게 한다

이런 날은 마음을 열어놓는 것이 좋겠다

아스라이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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