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31 신경림 <아름다운 손들을 위하여>
몇 해전부터 연말이 되면 궁금해지는 말이 있지요. ‘올해의 사자성어는 무엇일까?’
한국 교수들이 선정하는 사자성어로, 2025년 올해는 '변동불거(變動不居)'라는 말이 뽑혔다고 하네요.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는 뜻이랍니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모 교수의 말을 빌어봅니다.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정권 교체, 여야의 극한 대립, 법정 공방, 고위 인사들의 위선과 배신을 봤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신냉전, 세계 경제의 혼미, 인공지능(AI) 혁신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있다. K컬처의 성공과 APEC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국가 위상이 높아졌지만 국내외적 불안 요인은 지속되고 있다. 한국 사회가 거센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으며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시대적 메시지를 상징한다"라고 설명했더군요.
이렇게 어려운 설명은 아니더라도, 유독 2025년은 멈추지 않고 힘차게 흘러갔음이 분명합니다. 우리 시대에 가 당치 않았던 2024.12.3. 계엄령 이후, 전 국민이 얼마나 수없이 많은 살얼음판을 오고 갔습니까. 얼마나 가슴 떨리는 긴장 속에서 우리의 일상이 흔들렸습니까. 소시민인 저나 대단한 정치인들이나 그 혼동의 정국을 마주했던 농도는 비슷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자정을 울리는 종소리가 있기까지, 또 새해의 문이 열리는 순간까지 ’ 변동불거‘라는 이 말은 변함없이 우리들 세상을 두드릴 것입니다. 멈추어서 흘러가지 않으면 세상이 아니니까요. 그런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산 사람이 아닐 테니까요. 그러니 올해의 사자성어로만 남지 말고, 새해에도 끊임없이 우리의 가슴을 희망으로 고동치게 하는 주옥이 되길 바랍니다.
저도 오늘 하루 방학, 내일은 빨간 날이라고 방학으로 이어지네요.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살아왔던 지난 365일을 되새겨보려 합니다. 자정에는 서울보신각의 종소리를 잡아당겨서 마음을 새롭게 하고, 저를 알고 있는 모든 분들의 안녕과 평화를 기도하렵니다. 오늘 하루로서 지난날들이 세신 될 수 있도록 겸허하게 일초 일분을 걸어가 보겠습니다. 2025년 올 한 해도 봄날의 산책에게 보내주신 여러분들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신경림시인의 <아름다운 손들을 위하여>를 들려드려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아름다운 손들을 위하여 – 신경림
어지러운 눈보라 속을 비틀대며 달려온 것 같다
긴긴 진창길을 도망치듯 빠져나온 것 같다
얼마나 답답한 한 해였던가
속 터지는, 가슴에서 불이 나는 한 해였던가
일 년 내내 그치지 않는 배신의 소식
높은 데서 벌어지는 몰염치하고 뻔뻔스러운 발길질에
드러나는 그들 무능과 부패에
더러운 탐욕과 위선에
분노하고 탄식하고 규탄하기에도 지쳐
이제 그만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싶었으나
우리가 탄 이 거대한 열차가
그들의 난동에 달리기를 멈추면 어쩌나
철교가 무너지고 철길이 끊겨
어느 산허리를 돌다가 산산조각 나면 어쩌나
불안하고 초조해서 너무도 초조해서
그런 속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
더 많은 몫을 차지하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남북 사이에 낀 짙은 먹구름에
멀리 밖에서는 쉴 새 없는 전쟁과 폭력의 울부짖음
창 너머 먼 하늘의 별을 보며
잠 못 이룬 밤이 또 얼마였던가
이제 지는 해를 향해 서서 가슴을 쓸어내릴 때다
그래도 우리는 무사했으니
혼돈 속에서도 많은 것을 이룩하고
많은 것을 쌓았으니
지는 해를 향해 서서 다시 한번 생각할 때다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 끌고 가는 것은
큰 몸짓과 잘난 큰 소리가 아니라는 걸
추운 골목의 쓰레기를 치우는 늙은 미화원의
상처투성이 손을 보아라
허름한 공장에서 녹슨 기계를 돌리는
어린 노동자의 투박한 손을 보아라
새벽 장거리에서 생선을 파는
머리 허연 할머니의 언 손을 보아라
비닐하우스 속에서 채소를 손질하는
중년 부부의 부르튼 손을 보아라
열사의 천막 속에서
병사의 다리에 붕대를 감는 하얀 손을 보아라
해가 지고 있다
내일의 더 밝은 햇살을 위하여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아름다운 손들을 위하여
사진> 멀리서 지인이 보내준 대도시의 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