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4 안도현 <겨울밤에 시 쓰기>
우리도 모르게 사랑하는 숫자는 3, 기피하는 숫자는 4. 2026년이 오기 전 여러 곳에서 탁상용으로 새해달력을 받아서, 학원에도 놓고 지인들에게도 드리고요. 심지어 성당의 달력 속에 책방이름이 있어서 허락을 받고 20여 권을 인문학당분들에게 나눠드리고요... 책방달력을 별도로 하려다가 비용이 부족해서 그냥 넘어갔는데, 다행스럽게도 더 훌륭한 성당달력을 받았지요.
벌써 3일이 지나가네 하며 달력의 숫자를 보다가, 해마다 만드는 가족달력이 와 있었던 것을 기억했지요. 지난 코로나 때부터 가족들의 추억을 일 년 내내 기억해 보고자 만들기 시작한 달력. 해가 끝날 때쯤 되면 동생들이 먼저 요청하는데요. 지난 12월에는 너무나 바빠서 딸에게 도움요청. 역시나 젊은 감각의 디자인으로 가족달력을 만들어서 1.1일에 도착하도록 했더군요.
제 남동생들 왈,,,’네 엄마보다 낫다.‘라며 칭찬을 받을 만큼, 딸의 센스와 노고가 들어간 가족달력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네요. 해마다 이런 모습으로 이렇게 살아왔구나 싶은 가족들의 모습에 흐뭇합니다. 가까운 지인들께, 꼭 가족달력을 만들어 보시라고 권하는데요. 시인들의 시를 담은 가족달력을 보기만 해도 잔잔한 기쁨이 넘치니, 참 잘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어제는 깜짝 놀랄 일이 있었는데요. 아산에서 온 가족 중 초등3학년 학생이 피아노를 보더니 연주하나 해도 되냐고 하더군요. 히사이시조의 ’Summer’을 거침없이 연주했어요. 그러더니,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는데, 친구가 연주하는 것을 들으면 할 수 있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홈스쿨링으로 집에서 엄마 아빠의 지도를 받는다고도 했고요. 동화책을 주고 싶다 하니, 자신의 용돈으로 사면 된다 라고도 했구요. 얼마나 당당하고 주관이 강하고, 예의 바르던지요... 하여튼 책방 피아노가 처음으로 어린이를 주인으로 맞이하는 횡재를 얻었네요.
책방지기가 날마다 만나는 행복의 색깔에 또 하나의 오묘한 색이 추가된 날이었답니다.
더불어 오늘 일요일은 또 어떤 손님이 다가올지요. 성당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면 횡재 같은 손님이 찾아올까요.^^ 누가 오시든, 오시지 않든, 오늘은 내일부터 시작할 학원의 새달 준비를 위해 여러 안부인사도 드리고, 계획도 세워야겠어요. 어제 김애란 소설가의 <입동>이란 소설의 한 구절에 있는 말.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가 눈에 띄었는데요. 저도 그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를 열심히 살아보겠어요. 안도현시인의 <겨울밤에 시 쓰기>를 들려드려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겨울밤에 시 쓰기 - 안도현
연탄불 갈아 보았는가
겨울밤 세 시나 네 시 무렵에
일어나기는 죽어도 싫고, 그렇다고 안 일어날 수도 없을 때
때를 놓쳤다가는
라면 하나도 끓여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벌떡 일어나 육십 촉 백열전구를 켜고
눈 부비며 드르륵, 부엌으로 난 미닫이문을 열어 보았는가
처마 밑으로 흰 눈이 계층 상승 욕구처럼 쌓이던 밤
나는 그 밤에 대해 지금부터 쓰려고 한다
연탄을 갈아 본 사람이 존재의 밑바닥을 안다,
이렇게 썼다가는 지우고
연탄집게 한번 잡아 보지 않고 삶을 안다고 하지 마라,
이렇게 썼다가는 다시 지우고 볼펜을 놓고
세상을 내다본다, 세상은 폭설 속에서
숨을 헐떡이다가 금방 멈춰 선 증기 기관차 같다
희망을 노래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를 생각하는 동안
내가 사는 아파트 아래 공단 마을
다닥다닥 붙은 자취방 들창문에 문득 불이 켜진다
그러면 나는 누군가 자기 자신을 힘겹게도 끙, 일으켜 세워
연탄을 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리 수출 자유 지역 귀금속 공장에 나가는 그는
근로 기준법 한 줄 읽지 않은 어린 노동자
밤새 철야 작업 하고 왔거나
술 한잔 하고는 좆도 씨발, 비틀거리며 와서
빨간 눈으로 연탄 불구멍을 맞추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 타 버린 연탄재 같은 몇 장의 삭은 꿈을
버리지 못하고, 부엌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 두고
연탄 냄새에게 자기 자신이 들키지 않으려고
그는 될수록 오래 숨을 참을 것이다
아아 그러나, 그것은 연탄을 갈아 본 사람만이 아는
참을 수 없는 치욕과도 같은 것
불현듯 나는 서러워진다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눈발 때문이 아니라
시 몇 줄에 아둥바둥 매달려 지내 온 날들이 무엇이었나 싶어서
나는 그동안 세상 바깥에서 세상 속을 몰래 훔쳐보기만 했던 것이다
다시, 볼펜을 잡아야겠다
낮은 곳으로 자꾸 제 몸을 들이미는 눈발이
오늘 밤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불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나는 써야겠다,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지금 내가 쓰는 시가 밥이 되고 국물이 되도록
끝없이 쓰다 보면 겨울밤 세 시나 네 시쯤
내 방의 꺼지지 않은 불빛을 보고 누군가 중얼거릴 것이다
살아야겠다고, 흰 종이 위에다 꼭꼭 눌러
이 세상을 사랑해야겠다고 쓰고 또 쓸 것이다
아산에서 온 초등학생이 연주한 <Sum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