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9 이봉환 <응강> <농담 반 진담 반>
양달과 응달의 뜻을 아시지요. 햇볕이 바로 드는 곳은 양달, 이와 반대로 볕이 잘 들지 않고 그늘이 진 곳은 응달인 것을... 새 책방으로의 이사는 매일매일 ‘양달’ 같아 보이고 또 ’ 응달이 있으면 안 되지. 양달만 있어라 ‘라고 기도하는데, 글쎄요 제 뜻대로 되어가는지... 어느새 새 책방의 문을 연지 한 달이 지나니 제 바람의 풍향과 온도를 측정해 봅니다.
책방을 들어서는 분들께서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 안방같이 따뜻하고 포근하네요. 봄날의 따뜻함을 전하고픈 책방의 외형면에서 일 단계 작전은 성공인 듯해요. 외모는 잘 갖추어지고 있으니, 주인장 내면의 색도 따뜻해져야 되는데~~ 라는 묘한 근심이 일어나는 아침입니다. 혹시 마음이 가난해질까 봐서요.^^
그래서 어젯밤에는 일부러 이봉환 시인의 시집 <응강>을 한번 더 읽어 보았습니다. 약 한 달 전에 다녀가신 시인의 시집인데요. 제가 상식이 부족해서 ‘응강’의 뜻을 물으니 시집을 읽어보라 했답니다. 전라도 사투리로 응달(그늘)이 ‘응강’이더군요. 표준어보다 마음에 와닿는 시어의 신비로움. 지인들에게도 물었는데, 아무도 몰랐던 지극히 오묘하고 모서리 없는 단어입니다.
시집에는 특히 어머니 얘기가 많아서, 읽는 내내 마음이 울먹해지면서 저절로 따뜻한 응강이 만들어집니다. 어제 제게 일어났던 한 순간의 ‘사고의 멈춤’ 상태가 저절로 해동되는 듯했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다시 느꼈네요. ‘이래서 시를 읽는 것이구나 ‘ 하고요. 실타래가 엉켜질수록, 첫 한 올을 꾸준히 천천히 끌어내어 다시 동글동글하게 말아야 함을 이론적으로는 잘 아는데, 실제로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어쨌든, 수업과 인문학당 관련 회의 후 그냥 누워서 시집만 읽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또 하나 드릴말씀이 있군요. 군산 인문학당에서 시리즈로 주최할 '군산지역작가초대마당'에 관한 소식입니다. 말랭이 책방을 하면서 '지역작가님들과의 대화'를 몇 차례 했었는데요. 올해부터는 시리즈로 이 마당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첫번째 시인 이순화작가와 수필가 편성희작가님을 모십니다. 다음 포스터 보시고 가까이 계시는 작가님들의 속내를 들으면서 즐겁게 얘기마당 펼쳐보시게요.
겨울철새의 시간들, 기러기편대의 엔진소리가 사랑스럽네요. 조만간 시간 잘 잡아서 다시 한번 나포 뜰의 가창오리 군무를 보길 희망합니다. 혹시라도 제가 긴급 번개팅으로, 군무 보러 갑시다 하면 가까이 계신 분들은 나와 보세요.~~ 오늘은 이봉환시인의 시집에 나오는 첫 시 <응강>과 <농담 반 진담 반>을 들려드립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응강 - 이봉환
그늘이나 응달이 고향에서는 응강인데 꼭 응강이 춥고
배고프고 서러운 곳만은 아니었다 시래기는 뒤란 처마 밑
응강에서 꼬들꼬들 말라갔으며 장두감을 설강 위 응강에
오래 두어야 다디단 홍시가 되어갔는데, 무엇보다도 어릴
적 마루청 밑 짚가리 응강 속에서 달걀을 훔친 내가 흠씬
종아릴 맞고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잠들어버린, 고향에
서는 정지라고 부르는 부엌 구석 어둑한 응강의 찬 기운
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하였으니 거기가 서늘하고 길고
시퍼런 물줄기를 가진 강 중의 강이기는 하였던 모양
농담 반 진담 반 - 이봉환
퇴직을 하고 벌써 칠 십을 훌쩍 넘긴 전직이 교사인 선배
한 분이 전교조해지교사모임에서 소주잔을 탁 털어 넣어
며 말했다
세상살이 너무 편해도 못쓰것드랑께! 뭔 세월이 그리도
빨리 가냔 말여 그라니까 가는 시간 좀 찬찬히 가시라고
붙잡을라믄 인생이 좀 고달퍼도 괜찮것드랑께!
사진, 박세원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