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71

2026.1.14 도종환 <종이배 사랑>

by 박모니카

언제부터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대학생이던 어느 날 마주친 잡지 하나가 <샘터>였습니다. 정기 구독한 때도 있었고, 한참 동안 구독을 쉰 적도 있었지요. 지난 코로나가 시작되던 해 2020년 1월, 다시 만난 옛 친구처럼 <샘터>를 다시 구독했지요. 우연히도 그해 가을 <샘터>의 특집 기획 편에 기고를 했는데 글이 채택되어 꽤 큰 상금(제 입장에서~~)을 받았어요. 소위 저도 등단인가 할 정도로 기뻤답니다.


그러니 <샘터>가 얼마나 더 소중하고 귀한 잡지였겠습니까. 제 성격에 엄청난 편애가 발동했지요. 물론 그 뒤로는 작은 선물 정도 받는 글 채택이었지만, 어떤 주제든지 가볍고 즐겁게 공모하는 일을 종종 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샘터>의 운영상 어려움이 실린 글을 읽었지요. 그래도 설마 휴간까지를 예상했을까요. <샘터>의 나이는 무려 55살입니다. 사람이라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년의 미와 지혜를 보여줄 나이 아닌가요.

잡지 <샘터>가 2026.1월을 마지막 호로 막을 내립니다. 대표 김성구 님이 첫 페이지에 이렇게 말했군요.

- 잡지(雜誌)의 잡(雜)은 한자로 ‘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잡지는 여러 가지 상상, 혹은 체험한 내용들을 시나 소설, 그리고 에세이의 형식을 갖춰 종이나 전자책의 모습으로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일반적으로 단행본이 한 가지 장르로 돋보이는 젓과 다르게 잡지는 무지개처럼 지식, 정보, 지혜 등 다채로운 속살을 보여줍니다. 1990년대 까지는 확실히 그랬습니다. -


저도 이 시대에 청춘을 보냈으니, 잡지의 무지개 같은 속살을 충분히 알고 있지요. 이런 잡지가 휴간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은 구독자의 수가 줄어서이지요. 스마트 폰, AI 등의 기제들이 모든 세상을 흡수하기 시작했으니, 종이책, 하물며 잡지가 살아갈 땅이 없어졌지요. 매일 종이책의 숨소리를 듣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보자고 책방을 연 제 마음엔 슬픈 일입니다.


결론... 발행인은 선택과 집중을 해서 새로운 형태의 <샘터>로 인간다운 콘텐츠로 다시 독자들과 만날 것을 약속합니다. 제 마음은 안타깝고 아쉽지만, 55년 동안 샘터를 이끌어온 모든 분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어요. 어쩌면 이번 1월호가 마지막 잡지가 되어, 언젠가 희귀한 책으로 만날 수도 있으니, 가까운 책방에 가셔서 <샘터> 1월호를 구매해서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이번 호에도 참으로 지혜롭고 귀한 글들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4800원의 잡지 값이 샘터 가족들이 보탠 마지막 손길에 큰 온기가 될 것입니다. (참고로, 년 초에 잡지를 받아 읽고 있는데, 문득 이제라도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서 말씀드리네요.)

도종환시인의 <종이배 사랑>을 들려드려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종이배 사랑 - 도종환

내 너 있는 쪽으로 흘려보내는 저녁 강물빛과

네가 나를 향해 던지는 물결소리 위에

우리 사랑은 두 척의 흔들리는 종이배 같아서

무사히 무사히 이 물길 건널지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우리가 굽이 잦은 계곡물과

물살 급한 여울목 더 건너야 하는 나이어서

지금 어깨를 마주 대고 흐르는 이 잔잔한 보폭으로

넓고 먼 한 생의 바다에 이를지 알 수 없지만


이 흐름 속에 몸을 쉴 모래톱 하나

우리 영혼의 젖어 있는 구석구석을 햇볕에 꺼내 말리며

머물렀다 갈 익명의 작은 섬 하나 만나지 못해

이 물결 위에 손가락 써두었던 말 노래에 실려

기우뚱거리며 뱃전을 두드리곤 할 때 물소리 섞인 그 말

밀려오는 세월의 발길에 지워진다 해도

잊지 말아 다오 내가 쓴 그 글씨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었음을

내 너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그물을 들고 먼바다로 나가는 시간과

뱃전에 진흙을 묻힌 채 낯선 섬의

감탕밭에 묶여 있는 시간 더 많아도

내 네게 준 사람의 말보다 풀잎 사이를 떠다니는 말

벌레들이 시새워 우는 소리 더 많이 듣고 살아야 한다 해도

잊지 말아 다오 지금 내가 한 이 말이

네게 준 내 마음의 전부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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