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77

2026.1.20 이도윤 <향기가 꽃을 만든다>

by 박모니카

군산 귀향 23년의 삶에는 학원운영 21년이 들어있지요. 4살과 6살짜리 아이들을 떼어놓지 않고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로 선택했던 영어학원이었죠. 처음엔 1-2년 정도 하면 되겠지, 큰 아이가 초등학생 되는 때까지만. 그런데 제 인생에서 제일 굵직한 기둥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학원생으로 오래 만났던 학생이 대학생이 되어 찾아왔어요. 초등 5학년부터 고등2학년까지 만났으니 참 오래도 만났지요. 학교 선생님은 왠지 진짜 선생님, 학원 선생님은 왠지 안진짜 선생님 같은 제 생각 때문일까요. 이렇게 찾아와 주는 학생만 보아도 눈물이 납니다. 수업하고 있는데, 어느 낯선 청년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 저 00 이예요 ‘ 할 때까지도 몰라보았답니다.


방학이라 학원 옆 건물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는데, 원장님 생각나서 올라왔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요. 사실 그 누이까지 저를 만났으니 저와의 인연이 길지요. 누이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글 쓰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길래, 책방에 꼭 찾아오라고 명함까지 주었네요. 지갑에 현금이 없어서 다 큰 청년 그냥 보내는 맘이 무척 서운했어요.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소소하지만 꼭 용돈을 주었는데요. 마침 카톡선물이 생각나서 대신했답니다.


이럴 때 학원운영 한 것도 괜찮은 일이네 라는 생각이 들어요. 때때로 학교보다도 훨씬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학원 시스템이 있고요. 게다가 수다 좋아하는 저 같은 원장은 공부 외에 다른 이야기를 잘 들려주니까, 오랫동안 기억에 남나 봐요. 중요한 것 하나 더 말씀드릴까요? 공부 잘한다고 맨 날 칭찬만 듣던 학생들은 잘 안 찾아와요. 그런데, ’이 세상에서 네가 가장 귀한 사람이야. 그까짓 공부, 그까짓 영어 중요하지 않아. 사람답게, 너답게 자신감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해.‘ 라며 성적 낮을 때마다 격려했던 친구들이 더 잘 찾아옵니다. ^^

오늘도 누군가가 저의 격려 한 마디로 차가운 겨울 들판에서 향기로운 꽃을 찾을 수 있도록 좋은 글 많이 담아두고 싶습니다. 이도윤 시인의 <향기가 꽃을 만든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향기가 꽃을 만든다 - 이도윤


향기는 고요한 노래와도 같아

언제나 세상에 머물러 있다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 만든다는 듯

어둠이 묻은 희미한 새벽빛에

나직이 인사하였다

나는 어떤 향기로 만들어지는가

다시 하루가 온전히 신기해진다

오래전 그대가 했던 말로 그대를 떠올리듯

생각이 쌓여가며 나는 점점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움은 형체가 없는데

지는 꽃도 아름답다는 걸

늙어버렸을 너에게 배운다

향기가 언제 다녀갔는지

작약에 꽃잎을 더 붙여놓았다

1.20학원졸업생1.jpg

1.9군산작가1.png 군산작가초대마당... 오시기 전 작가님들의 작품 읽어보는 센스~

김사인특강포스터(세부사항).png 김사인 시인 특강. 세부적 사항이 담긴 포스터 입니다. 아직도 신청자 30명이 안 되어 마음 아픈 모니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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