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h My Life

딸에게 스며드는 울 엄마의 향기

2021.6.25

by 박모니카


방송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멘트가 하나 있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이며,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공이란 기준이 무엇인지 육십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잘 모르겠다. 수치로 표현해주는 어떤 도구나 잣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성공한 사람일까? 를 자문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이 때로 슬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만하면 성공했네, 행복하지’ 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은 아마도 내가 살아있는 사람,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겠지.


내 인생에도 중요한 사람이 있다. 바로 친정엄마다. 섬 큰애기, 친정엄마는 천성적으로 밝고 따뜻한 기운을 가진 여자였다. 외가의 장대한 기골 또한 그 성격에 한 몫을 더했다. 왜소하고, 평생 말이 없던 아버지를 만나서 그 에너지가 속으로 움츠려들었던 그녀의 인생사를 보면 아까울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 오형제가 공부할 때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당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잘나나 못나나 전문대학이라도 나와야 사람대접 받는다고 오형제 모두 대학이라는 가방끈을 만들어 주었다.


어느새 팔다리에 검버섯이 무성하고 옆에서 바라본 엄마의 얼굴 주름은 보리쌀 알처럼 깊게 패였다. 운동해야 된다는 의사의 말에 따라 산책을 나갔다가 도로에서 엎어졌다고 두 손과 두 무릎에 붙인 커다란 파스를 보였다.

“못살아, 그러니까 운동화를 신고 가셔야죠. 도대체 몇 번째예요. ”라고 타박을 했다.

공감력 제로인 딸의 말에 서운하고, 당신의 불편한 몸에 속상해서 결국 말이 터졌다.

“이러다 살면 얼마나 살겄냐. 니네들 불편하게 할 정도로 살면 안되는디.”

눈치챈 나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했다.

“일단 엄마, 병원에 가서 골절이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겠네. 그리고 좀 우선해지면 다시 수영장가서 운동해야되. 나도 엄마 몸매 닮아가서 큰일이야. 엄마의 하얀 살결을 닮아야 되는데 왜 배 나오는 몸매만 닯아가지? 다이어트 좋다는 것은 다 사서 드시게요. 돈 걱정 마시구요.”


순간 마음이 풀어지셨다. “너는 그렇게 뛰고 다니는데도 살이 붙냐. 영양가 있는 것을 먹으면서 활동도 해야지, 쓰잘데기 없는 것만 먹으면서 그, 뭐 봉산가 뭔가 한다고 힘을 다쓰고 다니니게 살이 엉뚱한데로만 가는거다. 너도 ABC즙인가 뭔가 좀 먹어바라.”


“ABC요? 영어로 ABC를 말하는 거예요? 그게 뭔데요?”

“사과랑 비트랑 당근이랑 갈아서 즙을 냈다고 하더라. 특히 네 나이 넘어서면 혈관 청소가 중요해서 비트라는 것이 혈관을 깨끗이 하는데 최고라고 그러더라. 한번 먹어바라. 돈 벌어 어디다 쓰냐. 김서방도 뇌졸중, 뇌경색, 이런 것이 다 혈관에 관련된 거 아니냐.”


부모의 복을 받아 공부한 자식이, 그것도 가방끈 길게 만들 때까지 부모의 공로가 어디인가. 눈치 100단도 뛰어넘을 만큼 빠르게 호들갑을 떨었다.

“아, 그런게 있어요? 그럼 엄마 먼저 먹어야지. 엄마가 자꾸 넘어지는 것은 이게 다 혈액 순환이 안되서 그런거지. 사람이 피가 잘 도면 건강하고, 아니면 약해서 쓰러지는 거니까요. 잘 됐네요. 엄마가 아는데 있으면 신청해주세요. 내거랑 김서방 거랑, 엄마 모시느라 고생하는 우리 막내거랑. 내가 한 턱 쏠께요.”

“뭐 그렇게 까지 하냐. 얼마 전 내 이빨 한다고 네가 다 돈 내고. 김서방한테 미안하지. 이왕 에 말 나왔으니, 두 상자만 시켜서 먹어 볼까나?”


아침에 엄마 전화를 받았다. 오늘도 텃밭에 가냐고, 시간나면 와서 ABC즙 가져가라고. 빨리 가져가서 시원한 냉장고에 넣고 하루 2봉씩 김서방이랑 꼭 먹이라고 하셨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에 대한 답은 마땅히 내 엄마다.

”당신은 성공한 삶을 살고 있나요?“에 대한 답 역시, 지극히 그렇고 말고요 이다.

아직도 나를 당신 품 속에 있었던 어린아이에게 말하듯 대하는 엄마의 일상이 없다면 내가 얼마나 외롭고 슬플 것인가. 엄마가 뿌린 나 라는 씨앗이 자라서 육십을 목전에 두고도 감기몸살 한번 앓지 않은 것도 모두 내 엄마의 건강한 천복 덕분이다. 사람 챙기기 좋아하는 오지랖도 내 엄마의 본성이 내림 한 것이니 이만하면 성공한 삶이 아니겠는가. 좀 더 일찍 엄마를 같은 여자로서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더욱더 도전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더라면 얼마나 재밌게 사셨을까 하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진다’는 어느 의사의 말이 생각난다. 나의 몸에는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 속에는 엄마의 향기가 스며들어 있나보다.

”엄마, 이 옷 속에서 할머니 냄새가 있어. 난 이 향기가 좋아.“라고 딸이 말했다. 얼마 전 엄마가 여름 상의를 하나 주면서 당신이 작다고 네가 입어도 촌스럽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당연히 엄마는 나보다 세련된 분이니, 나야 횡재지 하며 받았었다. 그리고 몇 번을 입고 엄마에게도 보여드렸다. 그런데 딸이 그 냄새를 느꼈나 보다. 참으로 신기하다. 내 엄마의 냄새가 나에게 있으니, 딸에게도 유전될까.

텃밭에 자라는 작물들 중 꽃이 없는 것이 없다. 그 중 노란색 꽃들은 내 맘을 더 따뜻하게 해준다. 호박꽃, 오이꽃, 토마토꽃. 꽃이 피어야 열매가 있다. 꽃을 피워준 뿌리와 줄기가 내 엄마라면 꽃에 달린 열매가 내 딸일 것이다. 그러니 그 향기가 어디로 가겠는가. 다 제 몸속에 있겠지. 언젠가 내 딸이 내 나이가 되어 지금의 추억을 꺼내 들고 글을 쓸 수 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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