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6
머리에서 가슴을 거쳐 손과 발까지 가보면 어떤 세상이 올까.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 오는데 칠십 년 걸렸다. 세상엔 많은 길이 있습니다. 인생이란 그 많은 길을 따라 걸으며 저마다의 발자취를 남기는 여정입니다. 세상으로 난 길뿐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마음의 길이 있지요.’
김수환 추기경의 <친전>에 써 있는 글이다.
평생을 성직자로 타인에 향한 사랑이 제 몸속의 장기보다 더 굳건히 자리 잡았을 분의 말씀에도 사랑이 칠 십년이나 걸렸다고 고백하는데, 하물며 나는 감히 얼마의 세월을 말할 수 있으랴. 다행스럽게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저절로 눈높이가 내려간다는 것을 알았다. 30대까지만 해도 내 몸의 초점은 오로지 위로만 향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동행보다는 혼자서, 목을 뻣뻣이 들고, 하이힐까지 신고, 하늘이 가깝다 싶게 위로만 치켜들었다. 동갑내기를 만나 35살에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을 때까지도 여전히 난 위로 향한 머리와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내 삶의 초점이 바꿔지게 되었다. 그 배경에는 남편의 따뜻한 가슴과 부지런한 손과 발이 보여주는 세상이 있었다. 남편은 어떤 화려한 수식어도 필요없는 그냥 따뜻한 사람이다. 본인보다 약자라는 사람들에게 더 정을 주는 사람이다. 본 적 없는 사람일지라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다. 지나친 의리로 피폐한 삶보다는 도와줄 수 있는 범위를 제시하는 사람이다. 내가 본 그이는 30여년 만남 속에 처음과 지금의 모습에 변함이 없다.
둘이 하나 되어 사는 동안 그의 모습을 반의 반이라도 따라가도록 노력했다. 그이보다 조금 나은 것이 있다면, 생각한 것을 일단 해보는 과감성 정도는 있을 것이다. 어느덧 함께 산지 20년이 넘다보니 내 머리에 따뜻한 눈길이 채워졌다. 나의 도전성에도 이왕이면 남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아이들이 학령기가 되면서 나의 생각은 현장감 있는 생물체로 바꿔지기 시작했다.
자원봉사활동은 미약한 내가 매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동기체다. 특히 활동 그 자체도 그렇지만 수 십년간 활동한 인생의 선배부터 나의 지도를 받는 어린 학생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만나서 얻는 에너지는 내 삶의 강력한 파워엔진이다. 사람들의 마음, 생각, 활동, 그리고 그들이 미치는 영향력을 살펴보면서 꼬리를 무는 또 다른 자원봉사활동을 구상한다. 나에겐 일상의 반사경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나의 생각도 연못 속 고인 물이 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시대, 비대면사회에 지역민과 함께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기획할 일이 있었다. 평소에 지인들과 좋은 시를 필사해서 아침마다 단톡을 울리고, 서로의 일상에 행복의 시너지를 얻자는 약속을 함께 하고 있었다. 어느새 이 나눔을 더 멀리 나누고 싶었다. 생각을 간직한지 1년이 된 어느날,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일명 ‘필사시화엽서나눔운동’을 자원봉사활동으로 해볼까요? 라고 했다. 모두 단박에 오케이 사인을 주었다. 나도 역시 단박에 활동 기획안, 동아리, 봉사자모집을 끝냈다.
사는데 필요한 기본 의식주, 그 중에서 으뜸은 바로 먹는 것이다.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를 두고 한숨이 땅을 꺼지게 할 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사는 것은 먹는 것이다. 내 정신을 담아두는 몸은 먹는 것을 결코 마다하는 본능 중 최고의 갑 자리에 있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매일 매일 찾아오는 곳, 무료급식센터가 나의 봉사활동장소 중 하나다.
그날도 나는 아침에 안도현 시인의 시 <스며드는 것>을 필사해서 단톡방에 올렸다. 손가락을 쪽쪽 거리고 혀바닥이 입술을 다 훔치며 후루룩 거리며 맛있게만 먹던 밥도둑 간장게장 얘기를 표현한 시에 감동하고 시인에게 존경을 표했다. 우연인가. 급식센터에서도 회원들이 간장게장을 점심반찬으로 가져왔다. 아침에 읽은 시를 들려주니, 70대 봉사자들이 모두 한마디씩 했다. 감성이 넘쳐서, 무슨 말인가 해서, 그런 것도 시여? 하며 묻기도 했다. 아마도 그때 였을거다. 한 달에 두 번 만나는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주면서 시도 들려주자고 다짐한게.
‘필사시화엽서나눔’을 하자는 제안에 몰려든 봉사자들, 봉사시간보다 더 좋은 힐링시간이 될 것 같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제 시를 읽는다. 하루 한편도 좋고, 일주일에 한 편도 좋다고 했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니, 더 정성껏 그렸다. 그들을 보는 내내 나의 심장은 미소지으며 계속 말했다.
“나 계속 뛰고 있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뛰려고.”
봉사자들이 가져간 엽서의 빈 공간은 위대한 걸작이 되어 돌아왔다. 윤동주, 안도현, 도종환, 김용택, 이해인, 정호승, 김춘수, 나태주, 박준, 이병률, 천양희, 마종기, 문정희, 류시화 등의 시인들. 유명한 시인, 무명시인 할 것 없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희로애락을 공감해주는 시어들이 봉사자들의 순수한 그림과 함께 재탄생되어 돌아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언제 이렇게 많은 시인들의 시를 써 보겠는가. 학교 시험에 지쳐 사는 학생들이 언제 이렇게 시 한 줄 써보며 가슴에 무지개를 안고 파랑새가 날아보겠는가. 황혼의 지친 날개를 접을 힘도 없는 노인들이 언제 이렇게 손 글씨로 꾸민 시 엽서를 받아보겠는가.
함께 사는 세상은 함께 잘 살아야 한다. 가진 것이 적어도 함께 웃는 세상이면 좋겠다. 약한 몸을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남녀노소 차별없이 주고 받는 세상이면 좋겠다. 그런 세상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조금만 생각의 높이를 낮춘다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손과 발로 낮출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