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92

2026.2.4 김사인 <아무도 모른다>

by 박모니카

‘인문학당‘ 오로지 배움의 즐거움을 위한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연간 계획서를 구상하면서도 어떤 사람을 어떻게 만날까라는 주제만 떠올렸는데요. 어제는 장벽에 부딪혔어요. 좋은 사람과 만나려면 좋은 환경이 못지않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사실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요. 가는 곳마다 ’ 문화’라는 글자가 쓰여있는 공공장소의 시설은 참 좋지요. 첨단식 장비는 기본이고 멋진 장식, 깨끗하고 넓은 공간, 친절한 주인장, 입맛 당기는 먹거리 등 제가 봐도 참 머물고 싶은 곳들이 많아요.


그런데 인문학당의 첫 특별행사로 모시는 시인과 청중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제 모습이 얼마나 초라해지던지, 잠깐이라도 마음이 우울했어요. 강연에 필요한 프로젝트 빔도 부실하고, 마이크 시설도 빌려와야 하고, 의자들도 다 제 각각(중고품들만 모아서)이고, 날씨까지 추워서 난방에도 맘이 여유롭지 못하고요. 하여튼 행사 주최자로서의 자격 미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일. 오늘은 역량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오시는 분들이 덜 불편하도록 잘 준비해야겠다 로 마음을 바꿉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특강을 홍보하네요. 이번 행사는 ‘2026 군산인문학당 특별강연’ 시리즈입니다. 시리즈라고 했으니, 또 다른 특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올해는 인문학당이 첫발을 내딛는 거라, 이 행사에 큰 역할을 걸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근대시인들 4인방(김소월, 정지용, 김영랑, 이육사)을 김사인 시인의 해석으로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원래는 2명 정도의 시인을 2일씩 강의할까요 하셨는데, 책방의 입장에서 이왕이면 더 많은 시인을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더니 ‘4명의 시인을 북쪽에서 남쪽까지, 서운하지 않게 골고루, 이야기해 봅시다’라는 답을 주셨지요. 내일은 첫날, ‘김소월 시인 이야기’ 시간입니다.


아실까요. 오늘은 입춘이에요. 어제 김사인 시인과의 톡 중에, 봄이 먼 듯 하지만 시인과의 공부에 이미 봄이 와 있어요라고 했네요. 드디어 절기도 봄을 알리니, 이제 사방팔방에서 문 여는 소리가 장난 아니겠어요. 저도 역시 눈도 크게 뜨고, 귀도 넓게 열고, 마음은 더 활짝 펼쳐놓아 두렵니다. 저와 함께, 우리 인문학당에서 ‘공부의 즐거움‘이 주는 육감 만족을 느껴보시게요. 김사인 시인의 시 한 편 들어보실래요? <아무도 모른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아무도 모른다 – 김사인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픔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

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딴지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의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를 후려치던 빗자루는, 나의 옛 아버지의 힘센 팔뚝은, 고소해 하던 옆집 가시내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무덤들은, 흰머리 할미꽃과 사금파리 살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봄날 저녁은 어디로 갔을까 키 큰 미루나무 아래 강아지풀들은, 낮은 굴뚝과 노곤하던 저녁연기는

나의 옛 캄캄한 골방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할아버지는, 캄캄한 기침소리와 캄캄한 고리짝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등이 새카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


2.4입춘1.jpg
2.4입춘2.jpg

사진, 박선희 작가

김사인특강포스터(세부사항).png


매거진의 이전글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