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302

2026.2.14 박태건 <첫, 시집>

by 박모니카

세뱃돈을 준비하시지요? 저는 가족이 많아 장난 아니었는데, 아주 최근에는 성인이 된 조카들이 많아서 지출이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큰 몫을 차지하지요. 게다가 학원생들에게도 ‘세배하는 사람은 세뱃돈 준다’라는 말로 꼬셔서 설 명절의 의미를 설명하곤 하지요. 그런데 어제는 특별한 일로 세뱃돈을 미리 주었습니다. 금주 수업을 하는 중, 우리 학생들이 한자 능력이 너무 부족하여 문해력에 상당한 문제가 있고, 더불어서 영어독해에 미치는 영향에 비례함을 알았지요. 물론 새롭게 안 사실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학생들 개인의 이름 석자의 뜻을 물었지요. 제 학원생만의 문제일지는 모르나, ‘아이고야, 미치겄다. 어쩜 좋아...’ 저의 연신 한탄의 소리가 나올 정도로 학생들이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쓸 줄도, 그 뜻을 알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과제를 내고, 어제 칠판에 ‘각각 본인의 이름과 엄마 아빠의 이름을 하자로 쓰기‘를 시행했지요. 정확히 쓴 사람은 상으로 세뱃돈을 주겠다고 했더니, 열공했는지, 몇몇 학생이 정확히 썼어요. 못 쓴 학생은 연휴기간 동안 노트에 영어 단어 대신 한자로 가족들의 이름을 100번씩 써오도록 했습니다. 잘 쓴 학생은 바로 세뱃돈을 통장으로 쏘아주었더니, 환호성이 일었습니다. 제 말에 믿음이 생겼을 테니 더 열심히 공부하겠지요. 영어선생이 왜 이런 과제를 내는지, 여러분은 제 맘을 아시겠지요. 걱정되는 것은 제 아이들과 제 남편은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괜히 간이 쪼그라들어요.^^


우리글은 우리의 정신입니다. 정신이 없는 육체가 무슨 제값을 바로 하겠나이까. 글을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른말을 바르게 쓰는 일, 무수히 많은 연습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시를 공부하는 일도 그렇지요. 지금의 시가 있기 전까지의 시의 역사를 반드시 공부하면 좋은 이유가 있지요. 저는 비록 시 쓰기를 두려워하고, 그래서 아직도 멀리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하지만, 최소한 우리 글이 가진 정신과 혼을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게으르지 않고 싶지요.


오늘은 모처럼 평화로운 날이 될 것 같아요. 인사드려야 할 분들에게 저를 대신해서 제 아들과 딸이 인사를 했고요. 어릴 때부터 어른들께 두 번의 명절에 반드시 인사해야 함을 가르쳤는데, 이젠 성인이 되어 알아서 도와주니 고맙지요. 저는 세뱃돈을 받을 친정엄마와 조카들에게 편지를 쓰고요. 혹시 시간이 있는 벗들이 온다면 떡국을 미리 대접할 예정이고요. 책방과 인문학당이라는 공적 공간을 찾아주는 모든 분들께 일일이 인사드리지 못함이 늘 죄송스럽습니다. 제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오늘의 시는 군산인문학당을 찾아주신 박태건 시인의 시 <첫, 시집>인데요, 이 시가 참말로 좋습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첫, 시집 – 박태건


세상에 시인은 많고 그보다 많은 것이 시집이지만 첫,

시집을 내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쓰고 싶었다 시집은 팔

리지 않고 시집은 돌아왔다 서점에서도 시집은 시시하

다 반송된 시집 앞에서 반성했다


시인은 가난하다 해도 가난한 시인으로 유명해지고

싶진 않다 내 시에 가랑비 냄새와 해바라기 꽃잎 한 줌,

풀여치 소리 한 됫박과 애인의 혀 위에 얹을 첫눈 몇 송

이었으면 했다


어떤 날은 버스비 대신 시집을 내고 싶다 버스 안에

서 사람들과 좋아하는 시에 대해 얘기했으면 좋겠다 입

이 근질근질한 운전사가 가로수 아래 버스를 세우고 어

제의 날씨와 내일 만날 사랑에 대해 얘기했으면 좋겠다


내 시에서 맞이 나면 좋겠다 시집으로 시금치를 사면

요즘 시가 맛있는 철이라며 애인은 좋아할 것이다 큰 가

방에 시집을 넣고 바다로 여행을 떠나야겠지 시집 필요

하신 분, 하고 꽃 파는 아이처럼 소리쳐도 좋겠다 꽃 심

는 노인처럼 늙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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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에 자기 이름과 부모님의 이름까지 쓴 학생들 중,, 사진 게재 허락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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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건시인의 시집 <고려인 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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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엄마와 홍어 다루고 무침까지,,, 지금도 손이 얼얼하지만 평생 일하신 엄마 손만 하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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