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식탁에도 감자를 만난다. 지난 4월 텃밭의 삼분의 일, 두 개의 두둑을 감자씨를 심었다. 작년에 처음 시도에서는 땅이 질퍽하기도 했지만 감자에게 해로운 토양 바이러스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수확시기에 제대로 된 감자알이 거의 없어서 소위 감자씨 값도 거두지 못했다.
같은 실수를 면하고자, 올해는 감자씨를 파는 상점의 주인과 그 옆에 있던 감자 농부 할아버지의 얘기를 잘 들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고, 일단 땅이 고실고실 해야된다고.’
새로 얻은 땅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적당히 촉촉하고 적당히 마르고. 정말 고실고실했다.
감자씨 70여개를 깊숙이 심었다. 남편은 구멍을 내고 나는 감자 씨의 머리가 위로 솟게 조심조심 정성을 다해 심었다. 심은 뒤 구멍마다 물을 주며 흘려진 흙을 모아서 도톰하게 언덕을 만들었다. 누가봐도 내 손바닥 크기인 줄 알았을만큼 둥근 감자언덕이 사랑스러웠다. 두 달여가 지나 하지날이 되면 진짜 하지감자를 만날 수 있겠지 라며 눈도장을 찍었었다.
하루가 다르게 텃밭에 올라오는 풀들은 잡초라고 다 집어던지기에는 섬세한 눈길이 필요하다. 4년 전 왕초보 때엔 옥수수 싹과 옆에 자란 풀을 구별하지 못해, 옥수수 어린싹을 예쁘게도 다 뽑아버렸었다. 이제는 올라온 감자 싹에 감사 인사를 드릴 정도가 되었다.
갈수록 두터워지는 감자 줄기와 잎을 헤치고 튀어나온 감자꽃으로 매일이 행복했다. 연한 라이락 꽃 향처럼, 은은히 퍼지던 감자꽃 향. 늘 곁에 존재하는 엄마의 향기 같았다. 하얀꽃이면 파보나마나 하얀감자, 자주꽃이면 파보나마나 자주감자라고 한 시인이 말했다. 그 말은 정말 참 말이었다.
길고 긴 날, 하지 다음날, 부부는 감자를 캐러 떠났다. 나는 손에 딱 맞는 갈고리 하나 들고, 남편은 긴 쟁이 하나 챙겼다. 세상에 처음 나오는 감자들 집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처럼 깨끗한 감자상자 10개를 샀다. 아, 이 상자가 가득 채워진다면... 라고 상상했다.
2주 사이에 무성했던 감자 잎과 줄기에 갈색반점이 가득했다. 감자알을 키우느라 열과 성을 다했을 그들에게 고맙다고 전했다. 남편이 감자 줄기 하나를 잡고 말했다.
”궁금하고 떨리네. 얼마나 감자가 나오려나.“
”잠깐 잠깐요. 사진 찍어야지.“
말 그대로 이게 왠 횡재이란 말인가. 줄기와 뿌리마다 달린 감자가 스무 알도 더 된다. 흥분해서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내 손바닥 보다 큰 것부터, 애기 주먹한 것에 이르기까지 두 개의 두둑에서 10kg짜리 10상자를 채우고도 남았다. 벌레 먹은 것이 없을 정도록 대 풍작이다. 고양이가 뒷걸음질 하다가 쥐를 잡은 꼴인가. 초보가 이런 횡재를 받아도 되는 건가.
밭 현장에서 생생하게 온라인 판매를 알렸다. 20여분 만에 완판. 문자를 뒤 늦게 본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 ‘나도 사먹고 싶은뎅’이 고마웠다. 더 기가 막힌 건 감자를 사간 사람들의 감자요리대전 소식이었다. 찐 감자, 감자전, 감자샐러드, 감자파이, 감자볶음, 치즈감자구이, 감자강된장, 셀 수 없이 별의별 요리를 다 만들어 보여주었다.
딸의 카레요리 속의 감자는 내가 기른 수미감자. 역시 감자의 이색요리 중 으뜸은 감자카레밥이지. 삶의 희노애락을 찾아 방랑했던 수 많은 고행자들을 위해 시작되었다는 인도의 카레와 우리 토종의 감자가 만났다. 서로 다른 삶의 문화에서 보여준 음식의 언어는 하나였다.
‘아, 맛있다.’
딸이 준 카레밥에는 보리밥이 가득하다. 한달동안 보리밥만 먹어보자는 나의 제안에 남편 아들 딸 모두 불평의 말을 아낀다. 쌀밥처럼 이빨에 찰싹 달라붙어 쫀듯거리는 식감은 없다. 그러나 입 속에서 보리알이 미끌거리니, 더 꼼꼼히 씹는 습관이 붙겠지 싵어 열심히 천천히 먹었다. 이제는 적은 양에도 포만감이 생기고, 탄수화물의 양이 줄어드니 저절로 다이어트 식단으로 자리를 잡은 우리집 보리비빔밥. 그 위에 감자 샐러드를 더하니 금상첨화다.
아침에도 남아있는 감자 몇 알을 보면서 ‘네가 여러 생명을 살찌우게 하는 구나’ 하며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