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걷기와 텃밭 땅강아지분양

2021.5.22

by 박모니카

진짜 맛있어서 저절로 건강해지는 오월의 자연은 내 몸에 들어오는 천연조미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시 한편을 읽고 필사 한 후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아침 기침소리를 전한다. 주말인 오늘 아침에 문득 달력을 보니 벌써 스무 사흘째. 내게 천연재료를 대 주던 오월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을 걸 보았다. ‘아하,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가버렸네. 텃밭에 가봐야겠다. 요즘 부족했던 만보걷기도 할겸’


걸어갈 때 힘들어도 돌아올 때 싱싱차를 타고 올걸 생각하니 어린아이처럼 금새 침대에서 폴짝 일어났다. 오랜만에 집에 온 딸의 아침잠을 깨우며, 동행을 앞뒤없이 요청했다.

“지원아, 텃밭가자. 갈 때 걸어갈거야? 올 때 걸어올거야? 선택해!”

“으으으~~ 지금처럼 잠이 안 깨어날 때 엄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나 같으면 갈 때 걸어가지. 저절로 잠도 깰 것 같은데?”


착한 딸은 군말없이 일어나서 얼굴을 씻고, 썬크림을 바르고, 나를 쳐다보더니, “엄마도 발라야 해. 마스크 때문에 빛이 반사되어서 눈 쪽으로 기미가 더 많아진데” 라고 했다.

텃밭까지는 약 한시간 쯤 걸릴거라고, 저절로 만보걷기를 채우거라고 말하면서 출발했다.

자고 있는 남편에게는 알아서 뒤따라 오라고, 두 여성의 보호 의무가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운동을 한다면 걷기부터 하겠다고 결심한 후 유명한 배우 하정우의 걷기를 말해주는 책 <걷는사람 하정우>를 2년 전에 읽었었다. 최근 다시한번 후두둑 이곳저곳을 읽어보았다. 그의 책 어느 쪽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 만약 누가 하루 만 보를 걸으면 무조건 만 원을 주고 1보당 1원씩 적립해서 환전해준다고 하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공상을 해본 적이 있다. 걷기야 팔다리를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니 그것만으로도 돈이 생긴다면 사람들은 악착같이 걸을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나이들고 아픈 다음에 병원비를 왕창 들일 생각을 하면, 지금 우리가 걷는 만보는 억만금의 가치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

어떤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이 옳다고 느껴지면 행위로 실천하는 생활을 좋아하는 나여서 걸을때마다 ‘돈을 벌 수 있다면’이란 생각은 내겐 아주 매력적인 문구였다. 지인이 알려준 캐시워크라는 앱 활용, 딸과 함께 한달 걷기에 걸을 때마다 1000원씩 적립 등의 실천 바로 그것이었다. 최근 걷기를 좀 뜸했는데 오늘을 기점으로 다시 또 시작, 나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하정우 따라하기! 1보에 1원, 만보에 만원적립! 작심 삼일이 투성일테니, 적립된 돈으로 주간당 내게 선물하기! 만보로 억만금 저금하여 우리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기!

텃밭까지 가는길에 일거양득이란 사자성어까지 들먹이며 딸의 기분을 살폈다. 그러나 속 깊은 딸은 소위 사투리로 ‘암시랑토 안혀요. 이렇게 아침부터 엄마랑 걸응게 좋아요’라고 나를 북돋아 주었다. 코로나와 같이 입학한 대학생활은 2년째 대학생답게 않게 여전히 고등 5학년으로의 생활을 보내고 있다. 일부러 네 자리로 가서 그곳 생활에 섞여 살기를 권했더니, 막상 한번 올라가면 잘 내려오질 않았다. 역시 젊음의 피는 사람 많은 곳에서 끓는 법인가보다.


딸과 함께 텃밭가는 길은 그 어떤 길보다도 수다스럽다. 나의 수다도, 딸의 수다도 지극하다.

요즘 학교생활, 다가올 여름방학계획, 나의 새로운 봉사활동인 시 필사 나눔얘기 등등.


어느새, 1시간 5분만에 텃밭에 도착했다. 그래도 만보기는 만보를 찍지 못했다. 평균 1시간 20여분은 되어야 만보 알림이 울렸다. 오늘 안에는 만보 찍히겠지 하며, 텃밭을 둘러보았다.

일주일 만에 왔는데, 청보리는 황금보리알로 빼곡이 채워져 아침 햇살과 바람에 출렁거렸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일년에 두 번의 수확을 얻는걸 알았다. 가을날의 활금벌판만 생각했지 이렇게 가까이 봄날의 황금벌판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나의 4년차 친구 ‘텃밭과 식물들’이다.


곧 있으면 보리알도 털고 동시에 옆에 있는 물을 댄 논마지기가 채워지는거라고 했다. 세상이치가 이렇게 스스로 채워지고 스스로 비워진다면, 사람도 자연따라 이치대로 산다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 마는 세상 사람들의 만들어내는 군상이 떠올라 순간 고개를 훔칙했다.


여섯두렁을 채운 텃밭의 작물들 중, 감자가 가장 무성했다. 심은 감자씨가 다 싹 틔어 오르더니 어느새 꽃도 피고지고, 벌써 감자 이파리가 두렁사이를 빼곡이 채웠다. 아직 만나지 못한 수미산 감자의 토실토실, 고슬고슬한 맛과 향이 느껴져서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텃밭의 위치가 남향이고 지척에 물이 있어서 올 초에 회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심었던 작물들이 다른 텃밭에서도 제 자랑하기 바빴다. 코알라네 딸기, 상추를 비롯해서 에스터네, 가경네, 도토리네, 시티네, 마린랜드네 등 텃밭에서 자라는 작물들은 어느 것 하나 빠짐이 없었다.

단지 야속한 것 딱 하나, 내 밭의 옥수수가 드문드문 싹을 틔웠다. 왜그럴까...


옥수수씨앗 140알을 2개씩, 그것도 빨간색, 하얀색 색 맞춤까지 해서 정성껏 심었었다. 그런데 옥수수대를 선보인 것은 단지 10여개, 단단한 줄기를 맺은 것은 5개뿐이었다.

옥수수는 어느 곳에 심어도 생명력이 좋아서 매년 기대를 하며 심는 작물이었다. 풀도 맬겸 옥수수 심은 자리를 호미질하니, 유독 지렁이도 많고, 특히 땅강아지가 눈에 많이 띄었다.


범인이 여기 있었네. 옆집 할아버지 땅에서 울리는 페트병 딸랑소리는 바로 이 땅강아지의 접근을 막아주는 거라고 하더만. 그곳에서 넘어온 요것들이 내가 심어놓은 옥수수 알을 얼마나 맛있게 먹었을꼬. 그래서 이곳에는 진한 향이 나는 들깨를 심으라고 했었구나.


그렇지. 세상일이 내 맘대로 다 되면 무슨 싸움이 있고 무슨 걱정이 있을것인가. 재작년 고구마 밭의 고구마는 멧돼지의 밥상으로 차려주었었는데, 텃밭에 살던 애들한테는 내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으랴. 밭을 빌린 고마움을 이것으로나마 표시했다 생각하기로 하니 금새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게 인간이 간사로운가 싶어서 혼자 뭇었다.


이제는 자리잡은 옥수수 모종 10여개를 사다가 다시 심어야지. 그때는 땅강아지도 먹을 옥수수 알들을 미리 챙겨놨다가 아무도 몰래 주어야지. 텃밭에 애완용 땅강아지기를 키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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