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323

2026.3.7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by 박모니카

겨우살이 힘차게 이겨낸 봄동을 놓고 간 지인의 손길이 따뜻하야, 이런 은혜를 어떻게 베풀까 하다가 인문학당 임원을 맡은 선생님들을 초대했지요. 하는 일이 하도 많아서 저는 밥도 못 짓는 줄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있어서요. 이참에 그 의심을 싹 지워버리고 싶은 맘에 봄동비빔밥상을 차리겠노라고 했지요. 특별한 비빔밥도 아니건만 어느 사이 소문난 그 이름 ’ 봄동비빔밥‘을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묻기도 하네요. 봄동과 고추장, 그리고 계란프라이, 참기름 있으면 끝~~~ 영양이 부족하다 싶으면 고기 몇 점 얹혀놓으면 되는 일. 그러니 얼마나 쉬운 일인가요. 어제 점심을 이렇게 차려서 참 잘 먹었답니다.^^


역시 사람 사이는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이 가장 남는 장사죠. 식사 후, 올해 있을 인문학당기획 얘기도 하고요. 특히 춘삼월 춘 사월이 펼쳐지니, 인문으로 무장하고 어딘가 놀러 가고 싶은 맘이 굴뚝같고요. 아무리 공부하는 것이 좋다 해도, 맨날 책상놀음만 하면 머리가 막힐 듯해서 문화여행도 잡아보고요. 저의 급하지만 분명한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분들이라, 결정도 빠르고 협조는 더 빨라서 감사했습니다.


어제는 점심 후 집안일로 전남 나주에 다녀왔는데요. 남쪽에서 들려오는 매화꽃 소식이 부러웠는데, 나주향교와 그 옆 유명카페에서 홍매화, 청매화, 산수유를 만났고요. 나주향교에서는 간지럼쟁이 배롱나무와 소나무, 비자나무를 중심으로 대성전, 명륜당 등을 돌아보며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고 돌아왔네요. 홍길동보다 더 빠르게 왔다리 갔다리 하니, 살짝 피곤했지만, 그래도 지인들께 사진으로 꽃도 보내고, 시 창작도 해보시라 권유도 하는 등, 일거 몇득을 하는 귀한 시간, 잘 보냈답니다.


잠시 후 7시면 온택트 수업 시인 김수영을 만나는 데요. 김수영의 일화를 읽어보니, 박인환 시인과의 인연이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었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김수영의 크고 고독한 눈동자에 매력을 느꼈는데, 김수영은 평생, 박인환에게 외적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평한 글을 읽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인환 하면, 책방 ’ 마리서사‘를 중심으로 당대 최고의 멋쟁이여서 주변에 여인도 많았다네요. 그럼에도 박인환은 부인 한 사람에 대한 사랑도 지극했다고 하고요. 스님이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 두면 큰일인데, 저는 시인의 시보다도 신변잡기에 더 관심을 두고 읽으니 시 짓기는 애시당초 틀렸다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여러분께서는 이 참에 김수영시인과 박인환시인의 시 한편씩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오늘은 2024년 현역 시인들 설문조사 결과 ‘가장 좋아하는 시’로 뽑힌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 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들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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