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3.8 김수영 <가다오 나가다오>
1970년대 미국영화 <스타워즈>는 전 세계 문화사의 큰 척도가 되었다지요. 그때의 공상이 이제는 현실이 되었고, 불가능해 보이며 가공했던 모든 것들이 현실에서 살아나는 세상. 게다가 게임조종기처럼 움직이며 사람의 본성을 마비시킵니다. 그래서 전쟁도 게임이 되어버린 이 진짜 세계가 무섭습니다. 언론을 통해 보이는 전쟁의 참혹함마저도 불기둥 쏘아 올린 폭죽처럼 느끼며 즐기는 것이 더 무섭습니다. 이란의 어린아이들 수백 명이 죽었는데도, 미국 놈의 비인간성은 최고조에 달해서 이제는 가식으로나마 ‘미안하다, 실수였다’라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갖고 싶은 권력에 대한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요. 역사란 유구히 힘이 있는 자의 세상이었지만, 그래도 양심이라는 가치가 있어서 그 끝을 가늠할 수 있었는데, 지금의 미국 정부는 완전히 인간이 아닙니다. 어제 테헤란에 쏟아지는 폭격 소식이 뉴스 헤드라인을 다 차지하고, 무서워서 일부러 시청을 피하고 다녔습니다. 인간 폭악성의 발작을 하느님은 보고 계시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안 해주시는지 묻고 싶을 뿐입니다.
어제 아침, 온택트 수업으로 만난 ‘김수영시인과 시 세계’를 발표하는 어느 회원님이, <가다오 나가다오>라는 시를 올려주었죠. 이란의 전쟁과 아픔은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기에 이 시를 통해 다시 한번 식민지 나라의 슬픔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그 무엇보다 기도해야겠어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란 어린아이의 죽음을 애도해야겠고요. 미친 자들의 게임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한 분 뿐임을 간청해야겠습니다. 오늘의 시는 김수영 시인의 <가다오 나가다오>입니다. 봄날의 산책모니카.
가다오 나가다오 - 김수영
이유는 없다
나가다오 너희들 다 나가다오
너희들 미국인 소련인은 하루 바삐 나가다오
말갛게 행주질한 비어홀의 카운터에
돈을 거둬들인 카운터 위에
적막이 오듯이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는
석양에 비쳐 눈부신 카운터 같기도 한 것이니
이유는 없다
가다오 너희들의 고장으로 소박하게 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련인은 하루 바삐 가다오
미국인과 소련인은 「나가다오」와 「가다오」의 차이가 있을 뿐
말갛게 개인 글 모르는 백성들의 마음에는
「미국인」과 「소련인」도 똑같은 놈들
가다오 가다오
「사월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잿님이할아버지가 상추씨, 아욱씨, 근대씨를 뿌린 다음에
호박씨, 배추씨, 무씨를 또 뿌리고
호박씨, 배추씨를 뿌린 다음에
시금치씨, 파씨를 또 뿌리는
석양에 비쳐 눈부신
일 년 열두 달 쉬는 법이 없는
걸찍한 강변밭 같기도 할 것이니
지금 참외와 수박을
지나치게 풍년이 들어
오이, 호박의 손자며느리값도 안되게
헐값으로 넘겨버려 울화가 치받쳐서
고요해진 명수 할버이의
잿물거리는 눈이
비둘기 울음소리를 듣고 있을 동안에
나쁜 말은 안 하니
가다오 가다오
지금 명수할아버이가 멍석 위에 넘어져 자고 있는 동안에
가다오 가다오
명수할버이
잿님이할아버지
경복이할아버지
두붓집할아버지는
너희들이 피지도를 침략했을 당시에는
그의 아버지들은 아직 젖도 떨어지기 전이었다니까
명수할버이가 불쌍하지 않으냐
잿님이할아버지가 불쌍하지 않으냐
두붓집할아버지가 불쌍하지 않으냐
가다오 가다오
선잠이 들어서
그가 모르는 동안에
조용히 가다오 나가다오
서푼어치값도 안되는 미.소인은
초콜렛, 커피, 페치코오트, 군복, 수류탄
따발총……을 가지고
적막이 오듯이
적막이 오듯이
소리없이 가다오 나가다오
다녀오는 사람처럼 아주 가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