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픈 것도 잘 참으면서 왜 이렇게 비는 못 참는지 모르겠구먼. 아니 비하고 무슨 원수라도 졌나.”
“원수까지는 아니라도 하여튼 비는 보는 걸로만 족해요. 그것도 유리창 너머로만.”
실오라기 같은 비 한 방울만 맞아도 호들갑을 떨며 뛰어가는 나를 뒤따라 오는 남편은 비 오는 날에 수건 챙기기를 기억한다. 우리 각시 비 맞으면 안되지 라며...
지금 아이들의 사춘기 절정이 중2라고 하지만 나도 역시 이 나이에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책 읽기에 집중했고 글자탐독에서 어두움만 골라냈다. 그러나 아버지가 철선의 선주가 되던 해라서 처음으로 오두막같은 집이라도 우리집이 생겼다. 가난하다고 울엄마 아빠를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집안을 세워야지 하는 야물딱스런 큰 딸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말이 없어지고, 책만 보고 때론 노트에 뭐라 쓰는 일만 하며 내 사유는 다른 길로 빠졌다.
그때는 매일 매일 비가 오기를 기다렸다. 땅을 밟는 비의 무게만큼 내 속의 나도 비를 따라 하염없이 아래로 아래로만 가라 앉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온통 나의 슬픔이 되고, <노인과 바다>의 그 외롭고 고독한 끈기와 삶의 희망에서 나는 고독만을 취했다. 학교에서 나는 늘 우울한 학생이어서 담임은 엄마와의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네가 뭐가 부족해서 어둡냐. 부모가 없냐, 집이 없냐. 너는 큰딸이라고 너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존중받고, 맨날 책 본다고 너를 건들기는 하냐 어쩌냐. 학교에서도 좀 밝게 웃어라. 웃으면 복이 온다고 안하냐. 사람이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데, 사분사분 애들이랑 좀 사귀고, 대답도 시원시원하게 좀 해라.” 상담을 마친 엄마의 훈계였다.
나는 마음 속으로만 대꾸했다. 엄마가 내 맘을 어찌 알겠냐고. 사는 게 그렇게 말처럼 되는 게 아니라고.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고독한 과정을 겪었다고.
아마도 엄마는 내가 이걸 말로하면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냐고, 미치고 폴짝 뛰겄다 라고만 말할거라고. 나도 다른 엄마 아빠들처럼 이런 대답을 싶고 싶다고.
‘그래, 그렇구나. 네가 고민할 만 하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고 엄마 아빠도 그런 때가 있었단다. 잘 견뎌보자. 힘든건 언제든지 말해라.’
팔순이 된 엄마에게 가끔 중학교 시절의 나는 어땠나고 물으면, 그냥 좋은 모습만 기억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말 잘듣고, 부모 돈 벌러 나갈 때도 동생들을 부모보다 더 무섭게 혼내고 가르쳤지 라고 말한다. 엄마는 지금도 나의 외형만을 보는 것 같아서 내 속을 말할 수가 없다. 그러면 엄마가 믿는 우리집 기둥이 무너질까바.
고등학교 1학년때 학교에서 처음으로 커트가 허용되었다. 항상 이마를 시원스레 넘겼던 중학생 때와 달리 친구들의 머리모양은 제 각각 이었다, 커트라고 다 같은 커트가 아니었다. 머리 모양 하나로 학교 전체가 술렁거렸고, 이쁜 친구, 덜 이쁜 친구, 안 예쁜 친구가 구별되었다. 나는 언제나 안 예쁜 친구라고 생각했다.
누가 그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이유가 있다. 커트를 하니 앞머리가 이마를 덮었다. 어느 날 머리를 감고 다른 친구들처럼 예쁘게 머리를 말리고 싶어서 거울을 보았다. 순간 이마에 점 하나가 있었던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너무 놀래서 중학교 때의 사진들을 보니 희미하게나마 분명 있었다. 아뿔사!
그때부터 그 점은 나를 더 어둡고 우울하게 했다. 항상 머리를 숙이고 다녔다. 그러다보니 비가 오고 바람 부는 날이 제일 싫었다. 어느 날 나도 이 점을 빼고 싶다고 말하니 엄마의 말은 기가 막혔다.
“아니, 하늘이 알아서 준 복점을 뭐하러 뺀다냐. 남들은 일부러 붙이고 다닌단다. 너를 위해 있는 거다. 두고 봐라. 너 크고 나면 얼마나 복이 오는지.”
제 아무리 나중에 태산 같은 복이 온다 해도 나는 싫었다. 고등학생부터 결혼 전까지의 사진은 온통 앞머리가 덮인 머리모양이다. 단 한번도 이마를 보인 적이 없다.
남편과 4년동안 연애를 했다. 해박한 남편 덕분에 늘 배우는게 많아서 만남이 좋았다. 그런데 바람만 불어도 내가 먼저 사라지고 얼굴 한번 만지려 해도 싫다고 하더란다. 분명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갑자기 비바람이 친 어느 날 데이트를 하다가 내 이마에 있던 점을 보았단다. 결혼을 앞두고 남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원하고 밝은 나의 이마를 보이면 당신이 달라질거라고. 나는 처음으로 피부과에 갔고, 점을 제거했다. 친절한 의사는 결혼을 앞둔 여인이라고 얼마나 정성을 다하던지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신기하게도 점 하나로 나의 인생이 바꿔졌다. 결혼식장에서 하객들이 말했다.
‘신랑이 신부보다 낫네. 그래도 신부 이마가 시원하고 둥글둥글해서 둘이 잘 살겄어.’
사실 남편의 아킬레스건은 좁은 이마였다고 말했었다.
그 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도 비바람이 불어도 얼굴을 들고 크게 환호했다. 우연히 내 이마를 본 사람들은 시원스럽고 둥근 이마가 이쁘다고까지 했다. 그 점 하나 없애는데 단 한 달도 되지 않을 줄 알았더라면 20여년동안 왜 그렇게 살았을까. 너무도 말 잘 듣는 딸이었다. 지금은 엄마에게 당당히 말한다. 그 점이 내 어둠을 모두 다 가져갔다고. 이제 불편한 것은 무조건 없앨거라고.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래서 눈썹문신도 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습관적으로 비바람은 두렵고 멀리하고 싶은 존재다. 아마도 내 속 깊이 어딘가에 나의 어둠이 새겨져 있나보다. 게다가 내 삶의 나이테인 주름까지 가득하다. 재주있는 우렁각시가 주름도 밝게 만들어 준다면 좋겠다. 그 우렁각시가 나보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할텐데.
오늘도 비가 온다. 비가 오면 종종 가수 바람꽃의 <비와 외로움> 듣는다. 결혼 전 나의 외로움과 고독함도 꺼내본다. 청춘 때 연애한번도 제대로 못해 봤던 아쉬움도 절로 나온다. 이 말을 들으면 남편이 기가 막혀 하겠지...‘살다보니 우리 각시가 이런 농담도 다하네 그려.’
- 낯설은 이 비가 내 몸을 적시면 살며시 찾아드는 외로움, 조용한 선 술집에서 생각하는 그대 모습. 길가에 가로등 내 몸을 비추면 살며시 찾아드는 외로움, 조용한 그 까페에서 생각하는 그대 모습. 그대가 내 곁에서 멀어져 바람 속에 묻힐 때, 또다시 길을 나서며 맞는 낯설은 비와 외로움, 내 마음 쓰러져 길가에 쓸쓸함이 쌓이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