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3.13 이재무 <첫사랑>
마음의 중심이 흔들리거나 불안할 때 기준점이 되는 것이 있으시죠. 저도 몇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고전에 나오는 글 한 줄 읽기’입니다. 악기를 다룬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하는 일은 저의 특별한 재능을 요구하니 제겐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데 책 읽기는 저의 ‘눈과 손가락’ 하나만 필요한데도 금세 마음을 평정시켜 주는 걸 보면 약 중의 명약입니다.
삶 자체가 고난이 기본 가라고 생각하면 불안할 것도, 손해 보는 것도 없어 보이지만, 실제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그 점을 인정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쉽지 않지요. 그나마 가능하면 바로 생각을 전환하는 긍정적인 성격인데도, 어디 세상 사는 일이 저 혼자만 잘하면 되는 일도 아니어서, 0.1도만 돌아보아도 근심과 걱정이 도처에 있군요.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밤 산책을 하고 있는데, 그때 울려준 지인의 ‘논어 한 구절’이 약이 되었답니다.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為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증자가 말했다지요.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나 자신을 반성한다.(자성 自省)
남을 위해 일을 하면서 충실하지 않았는가.(충 忠)
벗과 사귀면서 신의가 없지는 않았는가.(신 信)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학 學)
산책길에 이 문구를 웅얼거리며 걸어오면서, 제 아이들에게도 들려줘야지 싶어서 내용을 공유했더니, 딸이 바로 응답하더군요. 세상에 수많은 책, 그 속에 수많은 글과 사람이 있어서 젊은이들이 혼동하지 않고 자기중심의 기준점이 될만한 책과 글을 바로 알기 참 어렵지요. 제가 읽어서 좋고 배워서 좋았던 내용을 전해주었을 때, 공감의 메시지라도 보여주면 왠지 또 제가 그들의 기준점이 될 수 있겠구나 싶어서 더 공부해야 되겠다 생각했네요.
벌써 금요일이네요. 어제 학원생들에게 떡볶이를 만들어 주었더니, 역시나 ‘우리 원장님 떡볶이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떡볶이 집 해주세요.’라는 말도 들으면서 학원 못해도 먹고살 일 있어서 좋다...라고 대답해 주었네요. 누군가에게 먹거리를 주는 일, 참 복된 일이다라는 생각까지 하면서요.^^ 오늘도 누군가와 밥 먹을 일, 복된 일이 있을 거라 상상하면서~~ 오늘은 이재무 시인의 <첫사랑> 들어볼까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첫사랑 – 이재무
어둠이 빠르게 마을의 지붕을 덮어 오던
그해 겨울 늦은 저녁의 하굣길
여학생 하나가 교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마을의 솔기가 우두둑 뜯어졌다.
풀밭을 흘러가는 뱀처럼 휘어진 길이
갈지자걸음을 돌돌 말아 올리고 있었다.
종아리에서 목덜미까지 소름 꽃이 피었다.
한순간 눈빛과 눈빛이 허공에서 만나
섬광처럼 길을 밝히고 가뭇없이 사라졌다.
수면에 닿은 햇살처럼 피부에 스미던 빛
고개 들어 바라본 하늘엔
밤의 상점처럼 하나둘씩 별들이 켜지고
산에서 튀어나온 새 울음과
땅에서 돋아난 적막이 길에 쌓이고 있었다.
말없이 마음의 북 둥둥, 울리며 걷던 십 리 길
그날을 떠나온 지 수 세기
몸속엔 홍안의 소년 두근두근,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