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3.29 신경림 <당신은 시간을 달리는 사람>
책방에서 진행할 4월 행사를 기획하는데, 앉아서 손가락만 움직였더니, 온몸에 쥐가 나려고 하더군요. 마침 오늘 쓸 아침편지 사진도 없고 해서 책방 뒷동네 월명산 오름길로 갔어요. 머릿속에는 하얀 목련이 있을 걸 알고서요. 말랭이 바로 아래 동네인데도 그곳에 살았던 때가 언제였던가 할 정도로 마음이 멀리 있더군요. 아마도 매일 뭔 일이 그리 많은지...
저는 목련 하면 첫 번째 생각하는 노래, 가수 양희은의 <하얀 목련>이 있고요. 목필균 시인의 <하얀 목련> 중, ’ 하얀 소복‘이라는 말이 생각나요. 그러고 보니 그동안 아침편지에 목련꽃에 대한 시는 거의 없는 듯해서 한번 검색해 보았는데, 어제 본 목련봉오리에 딱 맞는 시 하나를 발견했지요. 이문조시인의 <목련>이라는 짧은 시인데, 아래 사진과 어울려요.
노오란 뾰족한 부리로 / 봄이 잘 영글었는지 / 콕콕 쪼아보고 있네.
돌아와서 인문학당 디카시 회원들에게 사진을 주며 ’ 시 한 수 지어 보시지요.’라고 했더니 이런 시들이 올라왔어요. 한번 들어보세요...^^
희님> 입맞춤 – 그대 / 향기에 취해 / 봄의 왈츠를 추련다 / 너를 / 안고서
경님> 목련 – 터질 듯, 사그라질 듯 / 너에게로 피어나는 마음 / 까만 밤부터 낮까지 / 너도 함께였구나.
선님> 바닷속 고래 – 푸른 바다 유영하는 / 아기고래 엄마고래 / 뽀롱뽀롱 뽀르르 / 노래를 한다
복님> 호오 – 얼굴이 반쪽 된 낮달 / 어디 아팠니? / 이리 와 / 호오 해줄게 / 쫑곳 입술 모은 꽃망울
제가 어제는 ‘호학’이란 주제로 짧은 글 하나 썼는데요. 인문학당에 모인 분들에게 사진 한 장 주었더니, 이렇게 많은 멋진 글들을 낚을 수 있는 배움의 장소가 또 어디 있을까요. ~~
어제는 또 아침 7시부터 줌으로 하는 현대시인 시 낭독 시간도 있었는데요. 이번엔 신경림시인의 시간이었어요. 2년 전 돌아가셨지만, 작년에 유고시집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2025. 창비>에 이르기까지 한국현대시 역사에서 매우 소중한 시인이시죠. 저는 10년 전 지인께서 <가난한 사랑노래>라는 시를 낭독하는 것을 보고, 신경림 시인을 처음 알았습니다. 어제 수업에서도 다른 회원들이 발표한 시와 창작시를 통해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평화로운 일요일. 신경림 시인의 시를 검색하셔서 두 편 이상 읽어보시게요. 저는 새롭게 알게 된 <당신은 시간을 달리는 사람>을 들려드릴게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당신은 시간을 달리는 사람 - 신경림
복사꽃 살구꽃이 피어 흐드러지고 안개를 뚫고 햇살이 스민다. 나는 먼 나라, 더 먼 나라로 가는 꿈을 꾸면서. 당신과 함께 나의 스물에.
종일 나는 거리를 헤맨다. 문득 기차를 타고 가다가 산역에서 내리기도 하고, 모차르트를 듣고 트로츠키를 읽는다. 당신의 눈빛에서 꿈을 놓지 않으며. 당신은 나를 내 나이 서른으로 이끌고 가고.
세상은 어둡고 세찬 바람은 멎지 않는다. 나는 집도 없고 길도 없는 사람. 달도 별도 없는 긴 밤에, 빈주먹을 가만히 쥐어보면 문득 내 앞에 나타나는, 당신은 나의 마흔에서 온 사람.
조금은 서글퍼 조금은 아쉬워서, 몇 발짝 뒤처져 남을 따르면서, 분노하고 뉘우치고 다시 맹세하다가. 마침내 체념하고 돌아설 때 가만히 내 손을 잡아주는, 당신은 나와 나이 쉰도 예순도 더불어 하면서.
이제 내 곁에 와 서 있다. 내가 지금껏 알지 못한 세상의 기쁨을 알게 하면서, 내가 여태껏 보지 못한 세상의 아픔을 보게 하면서. 내 빛과 그늘을 모두 꿰뚫고서, 당신은 시간을 달리는 사람.
디카시 회원들에게 드린 <낮달과 목련>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