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 아침편지 350

2026.4.3 허영선 <사월에 쓰는 편지>

by 박모니카

‘4·3 레퀴엠’이라는 작은 부제를 가진 허영선 시집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를 받았습니다. 제주 4·3 사건 일을 앞두고 어떤 시인들이 무슨 시를 썼을까 궁금하여 찾아보다가 3월에 출간된 시집이어서 읽어보고 싶었죠. ‘레퀴엠(requiem)’은 라틴어 ‘Requiem aeternam, 영원한 안식을’ 에서 유래한 말로, 로마 가톨릭에서 죽은 이를 위한 미사(위령미사라고 해요)에서 하느님께 영원한 안식을 청하는 전례 음악을 뜻합니다. 허 시인은 어떤 미사의 마음으로 시를 썼을까요.


어제 중1 수업 시간에 ‘4월 3일은 무슨 날일까요?’라고 물었더니, ‘식목일인가? 금요일이지! 만우절은 아닌데??’ 등의 어설픈 대답을 하더군요. 그래서 제시 한 숙제... ‘4월 3일은 무슨 날인지 우리 한번 알아보자. 그리고 한 번씩 읽어보고 단톡으로 보내기. 우리 역사 이야기야.’라고 말했죠. 밤 9시경 학생 하나가 검색해 보았는지, 정갈하게 단톡으로 보내왔더군요.


사실 저만해도 4월 3일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문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제주도 평화공원에서 열렸던 제주 4·3 사건 추모식부터였죠. 그리고 한강 작가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은 후 더욱더 역사의 과정과 희생자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참 어둡게 살아온 세상이 오래도 되었습니다.


책방에서는 4월 역사를 되새겨보자는 의미로 다음 주 토요일 작은 행사를 하는데요. 그 이전에 책방에서 준비한 책들을 소개하면서 한 권이라도 읽어보자고 추천했어요. 군산에서는 해마다 4.16 세월호 관련 추모식은 있는데, 제주 4·3 사건 관련 행사는 잘 알지 못하네요. 제가 참여하는 수업 중 ‘줌 시강독’이 있는데요, 올해 1월에 만났던 김수열 시인의 <날혼>이라는 시집을 통해서도 제주와 제주 4·3 사건을 노래한 시를 많이 만났습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라도 봄날의 산책에서는 이날을 추모의 날로 하자는 마음을 세웁니다.


얼마 전 대통령도 제주를 방문해서 희생자들의 가족을 위로하고 잘못된 역사에 대하여 참회의 말을 전했지만, 제주와는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은 우리의 일상 안에 오늘 하루, 한순간이라도 과거 역사에서 희생되신 분들을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들려드릴 시는 다소 길어도 끝까지 읽어보시고, 이왕이면 제주 4·3 사건 관련 책들도 한 권씩 읽어보세요. 제주시인 허영선 시인의 <사월에 쓰는 편지>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사월에 쓰는 편지 – 허영선


혹여

사소하게 뒤척이는 가랑가랑 꽃잎처럼

안개 속에 나뒹구는 편지 한 장 못 보셨나요

봄 너울 휘장 쓰고 자박자박 건너오실 때

푸르싱싱 청대 숲 댓잎에 싸인 편지 한 장

어디 못 보셨습니까


어머니 아버지 누이야 형님 아가야

봄이면 돌아오신다던

당신 어디 갔다 이리도 늦어지나요

나 여기 이쯤서

그냥 그대로 기다리라 하지 않으셨나요


궁벽한 바람벽에 단단히 붙어서서

나 기다리라 하지 않으셨나요

봄나도록

속절없이 애만 타는 선홍의 명자꽃처럼

그저 나 하나 목만 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행여 눈 맞출까 돌담 틈새로 그대를 보았습니다

종종 언 채 꿈마저 호송되던 그날,

그대 뒷모습

차마 맞추지 못한 그대 눈동자,

어디로 갔나요


날벼락 무방비에 말씀 한 장 없으시더니

천만뜻밖 편지 한 장


"목공일 배우노니 봄이 오면 기다려라“


산지포구 검은 바다에 서룬 넋 놓고 앉아


무정한 이 기다렸습니다


까락까락 는쟁이 털어넣듯 곡기 한 톨

넘기지 못하던 그해,

얼핏 그대 뒷모습인가 따라가다가

허방만 허방만 짚었습니다


왕대왓 쉬익쉬익 애끊는 용암의 밤

누군가 따라오라 한밤중 말없이 따라나선 길


사르륵 무리져 꽃비만

눈물로 쏟아지더니

시린 가슴팍 덜컹 치며 떨어진 그 것,


아, 그제서야 그대인 줄 알았습니다


자락자락 어둠 속에 묻힌다고

묻히는 것 아닐 테지만

사랑도, 비애도 그냥 묻히면

묻히는 줄 알았습니다

해가고 달 가고 또 그러면

그만하면 잊어도 아주 잊은 줄 알았습니다


노가리 굴무기 꽝꽝나무 올라선 산전

그래 다 잊었다 잊었다 하였습니다.

봉긋봉긋 오름마다 고사리, 연둣빛

또락지는 이 사월,


그대 보듯 늙은 손에 봄꽃 술 한잔

산 것들 강녕하고 강녕하오니

그대여 몹쓸 마음 줄 이제 그만 놓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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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제주2.jpg 제주 4.3사건을 그린 대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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