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7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흘러오고 흘러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기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현재의 몸이다.’ 김훈작가의 <자전거여행1>편에 나온 프롤로그다.
자전거는 차량일까 아닐까? 분명 어릴 적 우리 동네에서는 자전거를 자전차라고했다. 그런데, 국어사전에도 잘못된 표기라 하고, 어떤 이는 자전거의 사투리라고 하니 차량이라고 답하면 안되겠지. 그래도 내 추억엔 자전차가 더 그리운 표현이다.
탈 것에 대한 나의 로망은 비행기도,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아닌 자전거였다. 내 발을 허공으로 들어올린 첫 번째 탈것은 아마 아버지가 태워주신 자전거였다. 아버지의 키가 나와 비숫했으니 분명 아버지의 등 역시 크진 않았을거다. 그런데도 어린 눈에 비친 아버지의 등은 동그랗고 너른 포근한 언덕이었다. 옛날 자전거는 짐을 싣는 받침대가 있어서 사람 역시 너끈히 탈 수 있었다. “꽉 잡아라. 떨어지면 큰일 난다.”
아버지의 형제는 없다. 남동생이 있었는데 어린시절, 장티푸스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엄마는 독자인 아버지가 외로워서 우리 오 형제를 낳았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아들 딸을 구별하지 않으셨다. 큰딸인 나에 대한 믿음 역시 굳건했다. 일 년에 말 백마디도 하지 않으셔서 거친 뱃 일을 지휘하는 선주라고 하기엔 너무도 순한 선비 같다고 했다. 덕분에 엄마가 거친 말을 사용할 수 밖에 없어서 울엄마는 사람들의 오해도 많이 받았다.
장마가 시작되어 연 사흘째 비가 내리다가 잠깐 사이 하늘에 산소같은 구름이 비추었다. 운전석에 앉아 신호를 기다리면서 올려다본 하늘아래 자전거를 탄 아버지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훔칫하고 놀라서 뒤를 쫒았다. 순간, 내가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나 의심하면서도.
자전거의 주인의 뒷태는 영락없이 아버지 같았다. 이번 달에 아버지 기일이 있는데 벌써 오신건가. 자전거는 아버지가 평소에 다니시던 시장 안 골목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내 차가 멈추었다. 자전거도 사라지고, 아버지의 그림자도 사라져서 마음에 바람이 일었다.
아들은 일주일째, 동사무소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자전거를 타고 다닐거라고, 자전거 수리를 부탁했다. 공교롭게도 장맛비가 계속되니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꼼짝없이 출근길에 내가 나선다. 남편은 다 큰 자식이 버스타고 다니면 되지, 일일이 데려다 주냐고 했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다 큰 자식이니 데려다 줄일이 얼마나 있겠냐고. 좀 있으면 부모를 떠날 일만 더 늘어날거라고, 내가 차라도 운전할 줄 알아서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고.’
“아들, 자전거 타면 어때? 엄마는 할아버지가 자전거 태워줬던 때가 생각나네. 할아버지는 자전거 타실 때도 조심조심 서두르지 않으셨지. 할아버지 성품만큼 자전거도 부드럽게 구르고 속이 깊었어. 오랫동안 잔고장 한번도 없었거든. 너도 부드럽게 타고 다녀.”
아들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거리며 듣기만 했다.
물건도 사용하는 사람의 성품을 닮는 것인지 아버지의 자전거도 늘 순하고 착했다. 깔끔한 아버지의 손길따라, 녹이 묻어난 적도 없었다. 고기를 잡으러 나간 아버지를 대신할 때는 우리 집 현관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도 톡톡히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유독 땅에서 발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있다. 계단을 이용할 때도 반드시 난간에 의지하며 오르내린다. 그래서 자전거를 잘 타고 싶은 욕심에 비해 두려움도 크다. 몇 년 전인가, 시에서 운영하는 ‘자전거배우기’프로그램이 있었다. 이때다 싶어서 신청하고, 처음 한 달은 시에서 제공한 자전거를 이용했다. 탈 때마다 내 몸이 얼마나 긴장하는지, 내가 주인인지, 자전거가 주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초보일수록 장비만 늘어난다고 하더니 나도 역시 그랬다. 장비란 장비는 모두 구입하고 만발의 준비를 하고 나서도 여지없이 수십번 넘어졌다.
한 달의 교육기간이 끝난 뒤, 남편은 기념으로 빨간색 자전거를 사줬다. 그것도 무려 58만원만. 내 평생 이렇게 큰 돈을 나를 위해 쓴 적이 없다고, 안 산다고 했더니, 우리 둘이 탈 것이고, 애들이 크면 또 탈것이니 아깝지 않다고 꼬득였다. 그 언변에 넘어가서 산 자전거를 나는 한번 타고 끝을 맺었다. 안장위에 앉을 때 마다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해서였다. 자전거 못 탄다고 인생이 뭐가 문제가 되나?라며 혼자서 위로를 했다.
빨간 자전거는 남편도 타고, 뒤이어 아들도 타고 딸도 탄다. 남편 말대로 들어간 돈은 아깝지 않을 만큼이다. 내가 아끼는 사진 중에 자전거를 타는 내 아이들의 모습이 있다. 아마도 유치원과 초등 저학년 때 였을거다. 나는 자전거 타는 것보다 추억을 만들어준 자전거가 더 좋다.
더욱더 좋은 것은 그리운 사람의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그를 통해 들어오는 세상의 길들이 내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땅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나의 두려움을 보고 자신의 자전거 뒷 자리를 내어주던 누군가가 생각나는 날이다. 멀고 먼 옛날, 젊은 청춘의 그 누군가가.
#김훈
#자전거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