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 넘으면서 조금씩 틈이 생겼다. 어쩔수 없이 양방의원을 찾았다. 가는 곳마다 의사를 만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물리치료실의 기계들을 만나고, 치료사와 정담을 주고 받는 일이었다. 지체높은 의사들은 기껏해야 5분 만남이지만, 물리치료실의 갖가지 기계들과 전문가들의 환자대우는 정스러웠다.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내원하여, 약 2번을 먹으니 한결 부드러웠다. 제 아무리 천하의 고관대작이 앓는 병이라 해도 내 고뿔만 못할 것이 분명한 이치다.
그래도 사람은 낫다. 어디가 아프냐, 병원이라도 가봐라, 어느 의사가 괜찮다더라, 아프면 본인만 손해니, 알아서 몸 챙겨야 한다 등의 잔설이 난무한 법이다. 이나마 이런 말을 듣는 처지라면 인생이 헛되게 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플 때 이런 빈 소리라도 들려주는 사람이 있길 기다린다.
그런데, 아무리 빈소리가 아닌 눈물겨운 소리를 들려주어도 듣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대가 있다. 바로 가족 아닌 가족이 돼버린 우리집 애완견 복실이다. 11년 전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혼자 남은 엄마는 2개월 된 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 받았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딸이 키우고 싶다고 해서 복실이는 우리 식구가 되었다.
복실이를 본 사람들은 무슨 종인지 늘 궁금해 했다. 흔히 믹스(mix)견 이란 말을 일부러 다른 용어로 표현해서 종의 이름을 만들었다. 일명 ‘하이브리드’견 이라고. 사람들은 ‘믹스’라는 말은 알아도 이 용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복실이의 족보를 만들기에 그럴싸했다.
복실이는 우리집에서 가장 날씬했다. 뚱뚱해질 시간이 없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밤 늦게 들어오는 내 일상 때문에, 많이 먹어야 하루 두끼였다. 개 사료에 익숙해질 시간도 없이, 그냥 우리가 먹는 주식 중, 고기 종류만 담백하게 먹었다. 때론, 고구마, 빵, 과자, 수박, 당근 같은 음식을 간식으로 먹었다. 간식을 먹어야 똥 냄새가 안 난다고 말하지만, 똥은 똥답게 냄새가 나는 거라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가족이 되었다.
나라에서 법으로 애완견에 대한 여러 조치가 있기 전까지, 목줄이나 마스크 없이도 잘 다녔다. 같이 산지 3-4년이 지나서야 낯선 사람, 모자 쓴 택배 아저씨를 보고 처음으로 짖을 정도로 조용한 성격이었다. 월마다 정수기와 연수기를 관리하는 사장님과, 코디님는 이런 복실이를 보고 영락없이 착하고 순한 아이 같다고 했다.
복실이는 건강면에서도 우리집 식구 다웠다. 지금까지 감기 한번 걸려본 적이 없고, 구충제 한번 먹어본 적이 없다. 학원에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혹시나 어린 친구들을 경계하느라 물까바, 예방 주사는 맞았다. 단지, 개의 생리를 몰라서, 목욕할 때 똥꼬주변을 짜 주어야 한다는데, 그걸 몰랐던 무지한 주인 때문에 가려움을 겪은 일이 있었다.
그런 복실이가 4일전부터 구토를 하고 설사를 했다. 첫날은 그러다 말겠지 하며 소리만 질렀다.
“야, 김 복실, 너 이리와바, 이게 뭐야, 누가 여기다 토하라고 했어? 엉?”
슬슬 눈치만 보며 저를 제일 예뻐하는 딸한테만 달라 붙어 있었다.
“엄마, 얘가 토하고 싶어서 토 했겠어? 뭐가 문제가 생긴거지. 복실이 토 한거 내가 다 닦을께. 엄마는 신경 쓰지마.”
“네가 오이를 주어서 그런 것 같다. 원래 개는 육식성이라 오이나 채소는 안 맞지.”
남편의 말에 딸의 입이 부루퉁했다. 복실이가 아픈 것을 두고 서로의 의견이 달랐다.
다음 날은 거실 위 이불 위에도, 심지어 내 이불 위에까지 토를 했다.
그때서야, 심상치 않은 복실이의 행동을 보았다. 다른 때 같으면 우리가 먹는 소리를 내면 가까이 와서 먹을 것을 쳐다보는데, 이틀 동안 먹은 것이 없었다. 물도 거의 먹지 않았다.
딸은 서울로 올라가면서, 내내 복실이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병원을 안가는 우리 부부를 속으로 원망하면서 갔다.
다음날은 변의 색깔이 달랐다. 아무데나 똥을 샀다. 어느 해 던가, 설사가 급해, 우리 학원 건물의 한 쪽에 대변을 놓고 도망간 어떤 사람이 문들 떠올랐다. 얼마나 급했으면...
복실이도 그랬나보다 라고 용서해주었다. 그런데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내 허리 통증도 심해지니, 복실이고 뭐고 다 귀찮았다. 일단 한가지씩 하자. 허리 통증 진단을 받았다.
가족 톡에 올라온 글 ‘복실이 병원 한번 가야될 듯.’ 4일째, 아무것도 먹지 않은 복실이를 불렀다. 느릿느릿 걸어왔다. 물을 묻혀서 입과 코에 묻혔다. 닭고기를 담백하게 삶아서 잘게 찢어 유혹해도 고개도 들지 않았다. 그래, 이 정도면 분명 문제가 있지.
눈을 마주보고, 내 말을 들려주어도 눈만 껌벅거렸다. 10년을 넘게 살았는데, 우리가 서로 맘을 모르는구나. 내가 소리를 질러도, 밥을 주지 않아도 언제나 꼬리를 흔들고, 양발로 묘기를 부리며 나에게 정으로 호소하며 애교를 부렸는데 정작 나는 복실이의 속을 몰랐다. 기쁜 모습만 보았지 아픈 마음을 볼 줄 몰랐다. 얼마나 슬플까.
- 혼자서 병원에 갈 수도, 어디가 아프다고 말을 할 수도 없는 인생인데,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안 보이냐? 무정한 가족-
이라고 복실이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혼자서 슬퍼서, 무서워서 울고짜고 하다가, 괜히 남편에게 짜증을냈다.
‘병원에 언제 갈거냐고. 이러다 복실이 죽는거 아니냐고’
병원에서는 장염으로 진단했다.
“탈수가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원하면 링거수액을 맞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전에 장염과 탈수에 필요한 주사와 약을 먼저 먹게 하지요. 더 심해지면 그땐 세밀한 진찰이 필요해요. 이 주사는 많이 아프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