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h My Life

우보천리 (牛步千里)

2021.7.9

by 박모니카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의 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 ‘우직한 소처럼 서두르지 않고 일을 처리함을 이르는 말’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 나도 역시 그런 재능이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은 숨겨져 있고, 어떤 것은 드러나는 것도 있다. 때때로 지인들에게 나의 재능을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한다.

“선생님은 추진력과 리더쉽 짱이라고. 목표를 설정해서 결과를 얻어내는 것, 언변이 좋아 설득력이 있는 것, 직업인 영어를 할 줄 아는 것” 등을 언급한다.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이런 뚜렷한 성격으로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때론 너무 뚜렷해서 뜻하지 않게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지만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속을 보이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오히려 큰 이득을 보았다.


나를 생각할 때, 잠재적 취향이나, 재능 면에서 가장 큰 약점은 수평적 사고의 부족이다. 이는 아마도 공간감각의 부족에서부터 나온 것 같다. 학창시절, 수학영역에서도 도형을 가장 못했다. 음악보다는 그림에 재주가 없었다. 생각에서도 넓이를 요하는 부분이 항상 모자랐다.

성격 검사인 MBTI를 받아보니, ESTJ라고 했다.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았다.

남편은 나와 정 반대의 성격이고 품성이다. 수직적인 시야가 아닌 수평적 시야가 탁월하다. 계산 중심의 수 감각보다, 도형과 공간영역이 우세하다. 음악의 장단은 엇박자인데, 그림 재주가 좋다. 성격검사결과 INFP이다.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아들과 딸의 성격이 반반을 닮았다. 아들과 딸은 내 성격의 절반을, 남편 성격의 절반을 가져갔다. 참으로 신묘한 것 중의 하나가 자식인가 싶다고 우리 부부는 말한다. 이왕이면 부부의 좋은 면만 닮으면 좋으련만, 그것 역시 좋은 것과 안 좋은 것 반반씩 가져갔다.

작년에 친정엄마와 오형제의 얘기를 쓴 첫 에세이집 <어부마님 울엄마>를 출간했다. 책 속의 그림은 모두 딸이 그려줬다. 나의 이야기를 가장 잘 알고 있어서 말하지 않아도 적당한 그림으로 이야기의 강도를 높여주었다. 그림 한 점 당 최저 알바비를 제시했는데, 지인들이 나보고 거저 먹었다고, 딸이 착하다고 응대해주었다.


어릴때부터 딸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아들은 음악 듣기와 피아노 연주를 좋아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둘은 자기의 취미를 살려 실생활에 재밌게 적용한다. 책을 출간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작가들의 책을 보니 요즘은 작가가 직접 그린 삽화를 넣는 것이 대세인 듯 하다. 그림도 잘 그리고, 소위 캘리그래피로 자신만의 필체도 넣는다. 나도 따라 하고 싶어졌다.


글씨 쓰기인 서예를 해 본 경험이 있어서 한국화(문인화)를 수강했다. 작년 5월에 시작했으니 벌써 일년이 넘었다. 일주일에 한번 내지 두 번을 화실에 가서 따라 그려본다. 나머지 시간에 연습이 필요한데도 한번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냈다. 맘 속으로 가랑비에 속옷 젖겠지 하며.


그러다보니, 어느날은 더딘 속도에 수강비가 아깝고, 어느날은 없는 재주에 시간이 아깝기도 하다고 스승에게 고백한다. 듣는 스승의 맘은 고려하지 않고 말하니, 얼마나 속상할 것인가. 제자라고 말을 말든지, 다 커버린 성인 제자에게 혼을 낼 수도 없을테니 그 분이야 말로 이만저만 괴로운 게 아닐터다.

수묵화는 먹과 물로써 그림을 그리는데, 그 깊이는 참으로 오묘하다. 옛날 사람들이 유명한, 정선, 김홍도가 그려낸 그림은 천하제일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히 황홀을 느끼는 것은 그나마 내 맘 속에 이런 감탄할 줄 아는 감정이라도 있다는 신호일테니 고맙기만 하다.


일년이 넘은 지금, 다행스러운 것은 붓으로 반듯리 직선도 그리고, 곡선도 그리고, 강 약 조절 정도는 한다는 것이다. 스승한테 채본 하나를 받으면 보통 한 달을 연습한다. 오늘도 채본으로 받은 사군자 중, 난초와 국화와 매화를 각 1점 씩 그려보았다. 가장 많이 그린 난초 잎은 통과를 했다. 그러나 국화 잎과 줄기, 매화의 나뭇가지는 난공불락이다. 그 만큼 연습을 덜해서 그런거라고, 엄청 발전했다는 격려만 받았다.

사군자가 더디니, 한국화에서 바위를 그려볼까 하고 따라했다. 붓을 옆으로 눕혀서 굵게 터치하는 기법인데, 첫 시도에 그럴싸해서 보여주니, 잘했다고 칭찬했다. 어디가서 그림 재주 없다고 절대 말하지 말라고, 그 얘기 들으면 가르치는 내가 속상하다고 스승은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늘 어렵고, 힘들다. 내 해석으로는 기본적인 자질에 공간감각이 부족해서 라고 느낀다. 올해 출간 예정인 두 번째 책에는 꼭 내가 그린 그림을 넣고 싶은데, 욕심인 것 같다.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복습이라고 강조하면서, 정작 나는 복습한번도 안해본다.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을 새기며, 위로를 준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재촉이 불끈불끈 솟아나서 나를 걱정시킨다. 그래서 다시한번 사자성어를 소리내어 본다.


‘우보천리’

‘우직한 소처럼,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깊이를 새기며 가자’

수묵화(바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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