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h My Life

'즐기는 취미'로 가는 여정

2021.7.12

by 박모니카

공자님이 말씀하셨다.

-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論語, 雍也)

자왈,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낙지자.(논어, 옹야편) -

-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옛 성현들의 말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지인들과 함께 주 1회 1 에세이를 포스팅하는데, 금주의 주제가 ‘취미’ 라고 나왔다.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글로 쓰면 더 멋진 일상으로 탈바꿈되는 변신을 즐기는 카프카의 후예들. 매주 주제를 정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일단 주제라도 받고 나면 조금 더 깊이 있는 글을 쓰고자 노력한다.


주제로 ‘취미’를 받는 순간 공자가 말한 위의 고사성어가 생각났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나눈다면 크게 ‘아는 것(知), 좋아하는 것(好), 즐기는 것(樂)’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지식에 대한 호기심은 공부로 이어져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잘하게 되어 좋아하게 된다. 또 좋아하는 것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즐겨 한다. 결국 사람이 무언가를 알게 되는 일, 알고 싶어 하는 욕망이 첫 단추에 놓여진다.


그러나 알고자 하는 욕망이 넘쳐서 지식의 그릇만 커지는 일 또한 흔하다. 또 지식적 욕망이 자신만을 향해 있어 이기적 소산으로 남는 것은 더욱더 큰 일이다. 이러다보니, 아는 것이 즐기는 것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자신과 남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하는 세상에 산다.


어려서부터 글자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다. 단어의 한 글자 한 글자의 정확한 해석을 이해하면 훨씬 더 재미있었다. 그래야 책을 읽는 흐름도 이해되고, 독후에 감상문이라도 자연스럽게 써졌다. 말과 글의 공통점은 글자들의 결합이다. 이 결합들의 연결고리가 부실하면 말과 글이 흔들린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대화를 하거나 글을 쓸 때도 연결고리가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는 습관이 있다.


그럼 나의 이런 습관은 과연 좋아서 하는 건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내 스스로가 좋아서라기보다는 타인에 대한 의식이 강해서이다. 소위 뒷말을 듣기 싫어서이다. 아직까지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니, 취미가 뭐예요 라는 질문에 당당히 ‘글쓰기 책읽기’라고 답할 수 없다. 그럼 나의 취미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잘 하는 것, 제일 많이 알고 있는 것, 다른 것보다 좋아하는 것, 그래서 때로 즐거움에 미소 짓는 것이 있긴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가지나 된다.


하나는 영어를 포함해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다. 당연히 영어교육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 지식을 가지고 때로 뽐낼 때도 있으니,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분명하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온지 30년이 넘었다. 아직도 영어에 목말라 해서 아침마다 먹는 ABC주스에 영어 한마디를 넣어서 먹곤 한다. What Sweet Juice!!

또 하나는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나름의 길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것을 취미라고 말하냐 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난 이 일을 할 때마다, 행복하다. 실제로 제법 많은 사람들의 진로를 함께 고민하고 길을 제시했다. 그 길로 가서 성공한 사람들이 진로결정 전, 고민했던 때를 얘기하며, 선생님 덕분, 언니 덕분이야 라는 말을 들으면 내가 기특해진다. 그들이 지역에서 미치는 영향력을 보노라면 왠지 나보다 더 멋진 모습에 부럽기도 하다.


최근에 내 맘 속에 자리 잡고 즐기기를 희망하는 것을 취미로 만들고 싶다. ‘책 읽고 글쓰기로 내 책 만들기’다. 이 일을 취미로 하려고 마음 먹고 시간을 계산했다.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예행연습기간을 두었다. 최소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라고. 그때까지 나는 직업으로 경제수단을 일구어야 하기에 그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책 쓰는 사람’이란 타이틀을 얻고자 한다. 아직도 연습기간은 이 삼년이나 남았으니, 아는 것과 좋아하는 단계를 거쳐 즐기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취미로 삼기에 충분하다.


요즘은 필사시화엽서나눔을하면서 또 하나의 욕심이 생긴다. 왜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이 많은지. 하지만 이거야말로 나에겐 욕심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나이가 되면 과욕이 가져오는 피해를 얼추 짐작할 수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다만 속삭인다.


“여러분, 예쁘게 만들어주세요. 저는 글자를 보고, 시를 맛있게만 먹겠습니다.”


지금 배우고 있는 수묵화와 한국화는 잘하고 싶어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노년에 내가 경작할 세상을 내 맘대로 그려보고, 혹시나 책을 쓴다면 그 속에 넣으면 좋겠다 싶어서 한다. 가르치는 스승 역시, 오래 하는 자를 따라갈 사람은 없다고, 나의 끈기를 칭찬한다. 하지만 그림에 대해서만큼은 끈기를 장담할 수 없어서 다소 미안해진다.

오히려 이 끈기를 가지고, 지금부터라도 노래를 배워볼까? 피아노를 다시 해볼까? 하며 음악적 관심과 소양을 꺼낸다. 가끔 아들에게 말한다.


”요즘 어린이들이 동시도 모르고 동요는 더욱더 모르니, 네가 선생님이 된다면 꼭 동시도 가르치고, 동요도 부르게 해라. 어릴 적의 배움은 인생에서 가장 단단한 씨앗이니까. 우리 둘이 합작품을 만들자. 엄마가 동시 쓰고 네가 동요 만들고. 디지털시대니까, 모자지간에 멋진 유투브 한번 만들어볼까나? 어때?”


아들은 심심하게 대답하며 내 등을 토닥거린다.

“네네 어머니. 좋아요. 선생 되고 난 다음에요.”


아마도 열정이 넘치는 엄마의 말을 거절하고 싶지 않은 배려일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주책바가지인 엄마다. 신세대 아들의 속을 알아차리지 못하니 말이다.

연꽃과 물쟁반.jpg 은파호수에 피어난 연꽂과 물쟁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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