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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ul 18. 2021

방울토마토도 장아찌돼요

2021.7.18 기사63

“오이가 이제 막바지인가봐요. 오이줄기와 잎에 물기가 없어. 오이모종 5개, 2500원어치 사다가 심어서 100개를 넘게 땄으니, 참 세상 부자가 따로 없네요. 오늘은 누가 가져갈거나...” 

   

코로나 확진자 급증으로 갑자기 학원수업을 멈추었다. 선생님들이 영상수업으로 하루를 보내고, 나는 영상수업에 답하지 못한 학생들의 학부모님과 상담을 하면서 방학기간 동안의 규칙적인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별히 주말동안 자녀분들의 외출을 자제시켜 달라는 부탁과 함께.

   

비록 하지는 지났지만 여름의 하루 해는 여전히 길다. 기상예보에 돌발성 소나기가 있어서 텃밭 작물들의 상태도 보고 주말 동안 먹거리도 준비할 겸 텃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번 장대비에 텃밭 지인들의 밭, 한쪽에 물이 빠지는 곳이 막혀서, 잎채소들이 많은 밭에 물이 고인 줄을 몰랐었다. 그 때문에 갖은 상추류의 잎들이 물러져서 이제는 밭에서 얻을 수가 없다.    


그래도 옥수수 대가 하늘이 낮다 하고 치솟으며, 풍작을 예고하고, 땅에서는 수박과 호박덩쿨이 지세를 넓히기 바쁘게, 열매를 선보였다. 우리집 수박은 아직 어리지만 그사이 호박을 대 여섯덩이 따다가 부침개와 된장국을 끓여 먹었다. 항상 느끼지만 자급자족의 기쁨이 참 좋다.    


올해 텃밭을 갈때마다, 한 가지 약속을 했었다. ‘오이 한 개, 고추 한 개라도, 꼭 누군가와 나눠먹자.’이다. 전업으로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면서 열매가 생길 때마다, 이거 사주세요, 거저 사주세요 하면 얼마나 꼴이 우스운가. 모종값도 기 백원, 땅 대여료도 일년에 2만원, 퇴비 한포대에 4000원이면 누구나 다 키울 수 있다. 덕분에 잘 먹었다는 말이나 들어보자.    


지난 6월부터 첫선을 보인 오이와 가지열매, 깻잎를 시작으로, 감자, 방울토마토, 대파 등이 줄줄이 나왔다. 풍성했던 수미감자는 지인들이 전량 사주고, 맛난 음식으로 화답해주어서 더욱더 농사의 재미를 알게 했다. 모종값에 비해 최대의 수확을 이룬 것이 바로 오이다.     


이번에 대여받은 땅 중 배수로가 좋은 쪽으로 오이와 고추를 심었는데, 아마도 수분을 많이 포함하는 오이의 자리로 제격이었던 모양이다. 모종 5개를 심었는데, 내 팔뚝 크기만한 오이를 무려 100여개를 땄다. 오이를 구부러지지 않고 반듯하게 하는 비법도 모르면서 남편은 열심히 장대 사이사이에 줄 사다리를 놓아, 고추대가 크기 전에 충분히 햇빛을 받도록 하는 등 정성을 다했다. 첫 오이를 수확하기 전날에도, 남편은 사진을 찍어와서, 첫 작품은 당신 손으로 따야지 라고 말했었다.     


오이를 따기 시작한 날부터 텃밭에 갈 때마다 누구와 나눠 먹을까를 생각했다. 올해 봉사활동으로 시 필사를 도와주는 지인들을 포함해서, 식구들, 성당 어르신들, 내 동네, 김밥집 사장님, 문구점 사장님들, 문인화 스승님까지 골고루 나눴다. 어느 날 필사팀의 정연샘은 내가 준 오이를 가지고 장아찌를 담아왔는데, 평소에 채소를 잘 먹지 않은 남편인데 정말 맛있게 먹었다. 속으로 별일이네 하면서 언젠가 만들어 줘야지 싶었다.    


여름날 저녁놀은 부끄럼 타는 새색시 볼 같다 라고 한마디 던지니, 남편의 운전대가 가볍게 춤을 추었다. 텃밭역시 무르익은 열매들, 무르익을 열매들로 곁을 스칠 때마다 열매들의 외마디가 들리는 듯하다. 나를 좀 봐주세요 라고. 고추 장아찌를 담고 싶다던 지인이 생각나서 고추도 한 바구니 가득 담고, 가지도 10여개 거두었다. 방울 토마토가 무더기로 영글어서 줄기가 축 늘어져 있었다. 틈새로 들어가 말 그대로 한꺼번에 쓸어 담다시피 했다.     

가장 많이 나를 기쁘게 했던 오이잎이 누렇게 까실거렸다. 이제는 물을 아무리 줘도 더 이상 돌려줄 게 없다는 신호였다. 참 많이도 따다 골고루 나눠 먹었지. 아래쪽을 보니, 기다린 듯 큰 것 작은 합해, 예닐곱개의 오이가 보여서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나도 한번 짱아지를 담아봐야지. 새콤달콤하게 알록달록하게 담아서 오롯이 나와 남편을 위해 먹어야지.    


집에 오니, 서울사는 동생이 왔다고, 아무리 바빠도 밥 한끼 먹자고 했다. 생각해보니, 내 동생만 오이 하나도 못 먹였네 싶었다. 장아찌 담아준다하니, 먹을 것 많이 줘 라고 애교를 부렸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생부부는 코로나 이후 일반인보다 훨씬 더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가족 간의 나들이 역시 아주 오랜만의 행사라, 뭐든지 싸 주고 싶었다.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그래, 이번에는 사랑하는 내 동생을 위해서. 세상이치 참 묘하네. 이번 오이도 주인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내가 어젯밤 열심히 요리사 K씨의 쿠킹 영상-장아찌 맛있게 담는법-을 보길 잘했지.”    


K씨가 말한 기본 레시피의 재료를 꺼내고, 내가 만든 매실청과 블루베리청 항아리도 꺼냈다. 한쪽에선 장아찌에 들어갈 소스가 끓고, 한쪽에선 매실과 블루베리 청을 내렸다. 두 종류의 청이 1L용기로 2개씩 나와서 동생 몫을 챙겼다.    


“오늘의 장아찌, 오이, 가지, 방울토마토. 양파와 고추를 양념으로 넣고 비트향을 섞어서, 조금 진한 색으로, 여름의 더위를 날릴, 새콤 강도 상, 달콤 강도 상!”

     

특히 방울토마토 장아찌는 흔하지 않아서 서양식 특별 음식을 낼때 곁들이면 좋다고 들었다. 방울 토마토의 껍질이 잘 벗겨지도록 뜨거운 물이 살짝 데친 후 메추리 알 껍질을 까듯 하나하나 벗기고, 다려놓은 간장 소스를 붓기만 하면 끝난다.     


어느새 새벽 5시가 아침 9시가 되었다. 서울에 올라갈 동생가족에게 보내줄 물건을 챙겼다.


“오이장아찌, 가지장아찌, 방울토마토장아찌, 생 오이와 가지, 3종고추세트, 매실청, 블루베리청, 또 뭐 없나?”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에 남편이 기상했다.    


“언제 이걸 다 했는가. 은영이가 좋아하겠네. 올 줄 알았으면, 좀 빨리 익은 옥수수와, 대파도 좀 갖다 놓을걸 그랬고만.” 

남편 역시 퍼주기는 가히 2등이 없다.

9살 차이나는 내 여동생의 손이 가득하고, 함박웃음이 좋다. 병원 사람들이라 그런지, 올 때마다 나이든 엄마와 내 건강, 남편건강을 챙기기 바쁜 마음이 고맙다. 가까이 산다면 무엇을 아끼리오.


http://omn.kr/1uh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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