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얼굴

2019.7 엄마와 텃밭이야기1

by 박모니카

지인의 텃밭에서 더부살이 농사 세 해 째, 내 삶에서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한다.

시작점에 두가지의 길이 있었다. 하나는 운동 삼아 아침시간을 활용하는 것, 또 하나는 텃밭을 학생들의 봉사활동 장으로 만들어 보자는 계획이었다.

농사에 농 자도 모르는 초보자가 겁없이 덤벼들었다. 모르니 미리 힘들것을 예상치도 못했다. 지인들과 함께 돌맹이 가득한 밭을 개간하여 두렁을 만들고 종자도 심었다.

갖가지 열매채소, 잎채소, 덩쿨작물 이르기까지 남들따라 모양새 내기에 바빴다.

수확을 할 때마다 지인들은 학생들의 봉사활동의 행사를 돕는다며 매번 수확물을 사주었다.

그렇게 2년동안 연말이 되면 독거노인을 위한 연탄기부금을 마련하는데 큰 자원이 되었다.


올해도 봄소식과 함께 텃밭역시 기지개를 폈다. 어느새 초보 딱지를 뗀 경험이 있는지라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호미, 괭이, 낫을 들고 나가 잡풀도 거두고 겨우내 얼었던 땅들에게 안부도 전했다.

해가 갈수록 늘어난 욕심만큼 두렁 수도 늘어났다. 또 한번 원대한 꿈을 꾸며 “자주 자주 얼굴 보여 줄게. 많이 많이 수확하게 해주.” 텃밭의 모든 생명들에게 즐거운 약속도 했다.


“ 올해는 뭐 심을거냐? 내가 노란호박 모종을 만들어 놨으니 텃 밭 한쪽 구석에 심어라. 호박은 지가 알아서 잘도 자라니 신경 쓸 것도 없다.” 어느 날 친정엄마의 전화가 왔다.

나는 곧 검색엔진에 호박 이란 두 글자를 두드렸다. 노란색 호박꽃이 활짝 웃고 있었다.

호박은 한해살이 덩굴풀이며, 꽃말은 해독, 개화기는 6월부터, 심장형 모양의 엽병을 가지고 있다고 써 있었다. ‘좋다, 올해는 호박잔치로 해보자’라고 결정했다.


친정에서 가져온 모종을 잘 개간하여 토질이 좋은 두렁에 일렬종대로 모두 심었다.

이를 본 남편은 “호박은 띄엄띄엄 심어야 넝쿨을 감당할 수 있지요.

그렇게 모 심는 것처럼 심으면 나중에 주변의 작물들을 덮쳐서 힘들어 집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개의치 않고 일렬종대로 반듯하게 열심히 심었다.


텃밭의 다른 곳에는 고추, 오이, 참외, 토마토, 가지, 고구마, 들깨, 열무, 옥수수 등을 심었다.

매일매일 언제 요것들이 나오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일이 될 지경이었다.

다른 작물들은 모종으로 심었지만 옥수수는 모종 값이 제법이어서 씨로 심어보았다.

지인들의 옥수수 모종이 자랄수록 내가 심은 씨앗옥수수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내심, ‘다 죽은 건가’만 중얼거리며 기다림의 결실을 믿고 또 믿었다.


같은 하늘 빛 같은 땅 기운을 받고 있던 작물들이 일거에 만세 백창을 부르면서 쑥쑥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중 호박덩쿨의 퍼지기 속도는 야행축제의 등불을 생각나게 했다. 이곳 저곳에서 노란 호박꽃의 찬가가 장관이었다. 처음으로 호박 꽃 밑둥에 호박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넝쿨의 끝자락에 더 큰 호박이 열리는 것도 알았다. 호박꽃잎의 깔깔한 성질이 우리에게 중요한 영양소를 준다는 것도 배웠다.


한편에선 옥수수가 작은 모종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강인한 기운으로 옥수수대를 만들어 쏟아 오르는 모습은 신비에 가까웠다. 이 어린 것들이 그렇게 빠른 시간에 어떻게 이런 많은 열매로 탄생될 수 있는지 신기한 세상이었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성장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이런 거구나.’


첫 호박을 거두는 날, 친정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짜짠. 엄마가 준 호박이지“

”그새 그렇게 컷드냐? 나도 내일 한번 가 봐야 것다.“

다음 날 엄마와 함께 텃밭에 가서 고추, 오이, 가지 등의 열매채소와 깻잎을 한 아름 땄다.

호박밭으로 간 엄마는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아구 아야, 여기는 큰 놈 하나 숨어있다. 넝쿨 자르게 가위하나 가져와라“

분명 내 눈에는 작은 것 들만 보였는데. 어느 곳에 숨었지 하며 가보니 진노란 호박꽃 넘어 넝쿨의 끝자락 깊숙이 커다란 호박하나가 앉아있었다.


”지 에미 닮아서이쁘게도 생겼다.“

”엄마, 엄마가 호박 에미를 어떻게 알아요?“

”내가 씨앗을 받아 심었는데 왜 모르겄냐. 작년에 늙은 호박 하나 얻은 것이 있었는데 그 씨를 받아 놓았다가 모종을 만든거지. 씨앗도 둥글둥글하니 이뻐서 새로나올 호박이 이쁘것다 했다.“


나는 엄마의 그 표현에 맘이 둥둥 설렜다.

‘아 그렇구나. 씨앗도 얼굴이 있었지. 왜 나는 한번도 씨앗을 얼굴로 볼 생각을 못했을까?’

그러고 보니 옥수수 씨앗을 심을 때, 70개의 씨앗 모양이 다 제각각이었다.

한알 한알이 모여서 탐스럽고 달콤한 옥수수 장정을 무려 30여개나 선물받았다.


씨앗의 얼굴 따라 열매의 얼굴을 가늠하는 것처럼, 지금의 내 얼굴로 미래의 나를 상상할 수 있겠지 싶어 그 날 밤 화장대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내 얼굴을. 동시에 한 노랫말이 음과 함께 떠올랐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 때 꿈을’

내 얼굴에 내 꿈을 담았을까. 내 얼굴에 내 꿈이 담겨질까.

내 얼굴의 씨앗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부터라도 그 씨앗을 잘 키우면 예쁜 내 얼굴이 될까.

호박사진.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