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쯤 이었을까. 갑자기 하얀색과 검정색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의 뒷모습이 함박꽃 같은 웃음소리와 함께 다가왔다. 그 속에서 소심한 듯 애정담은 고등학교 시절의 내 뒷모습이 보였다. 코스모스가 만발한 논 가를 따라 봉사활동을 따라갔던 길이 바로 이런 길이었기에.
올해 초봄부터 부지런히 다닌 길목인데 오늘따라 유난히 논 길가의 풍경이 생소했다. 맑고 푸른 가을 하늘아래 실바람을 몸에 감고 흔들거리는 진분홍빛 코스모스. 동무들을 데리고 외출 나온 첫 날 같았다. 태풍에 밀려서 이제야 힘 쓸 곳을 찾아 왔구나 생각했다. 어느새 가을은 벌써 와 있었던 것을 이제야 알았다니.
텃밭에 심었던 이른 절기의 열매 잔치를 끝내고 가을 시작을 하려고 아침부터 움직였다. 또다시 예고된 태풍소식에 놀라서 달려있는 열매들을 마지막으로 거두고, 알타리무우라도 심으려면 땅도 퇴비 넣고 섞어야 한다는 엄마 말씀이 떠올랐던 것이다.
세 두렁이나 심었던 고구마 밭은 고라니의 천연 밥상이 되어서 줄기 밑 둥에 고구마가 몇 개라도 나올까 싶었다. 밭에 앉아서 호미하나 들고 어설프게 줄기 따라 땅을 탕탕 두드려도 감감 무소식. 고라니의 후각은 초보 농부에겐 지독히도 냉정하구나 싶었다. 한 두렁을 다 파가도록 내 엄지 손가락만한 고구마 10개정도만 걷은 빈약한 수확이었다.
고추밭으로 왔다. 태풍 때문인지 튼실했던 열매들이 제 색도 내지 못한 채 병에 걸려 있었다.하지만 엄마의 마법 같은 손을 거쳐서 초록이 아삭거렸던 고추들은 그 변신이 대단했다. 여름 한철에는 새콤달콤한 고추장아찌로 밥상을 내치지 못할만큼 식욕을 돋아주었다. 덜 빨간 고추들은 아파트 12층의 베란다 태양밭에서 진 빨간 고춧가루로 다시 태어났다. 아무리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열매라 하더라도 사람의 손길, 사랑의 눈길 없이 어떻게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었으랴.
아직도 우아한 보라색 양식을 주는 가지나무를 제외하고, 고추, 참외, 방울토마토들을 안겨주었던 성체들을 다 뽑아냈다. 정말이지,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고맙고 더욱더 고마웠다.
주변에 인기척이 없어서, 사람에게 말하듯 진심을 전했다.
“얘들아 올해도 고생했다. 그리고 정말 고맙다”.
한참동안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데 엄마가 오셨다. 이제 초로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딸 인데도 당신이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린다고, 어찌 밭갈이는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오셨다. 엄마는 바로 호박밭으로 가셨다. 여름 내내 우리 모녀에게 복을 가득 던져준 호박밭. 이만저만 복을 넘어 내 생애 처음으로 물심양면으로 꽉 찬 행복을 가져다 준 호박.
“엄마 호박줄기는 어떻게 해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오늘 호박까지는 손도 대지 못해요.”
“아야, 기다려 바라. 그 사이 하나라도 어디 숨어있는지 보마”
두리번 두리번 이곳저곳 들춰보시기를 여러 번 끝에 손바닥 만 한 작은 호박들 몇 개를 가지고 나오셨다.
“와. 엄마 끝내주네요. 한도 끝도 없이 나오네요. 진짜 복덩어리야. 한 50개도 넘는 것 같은데요?”
첫 호박이 열린 후, 우리집뿐만 아니라 앞집, 옆집, 건너집, 심지어 엄마 고향인 섬에 사는 친척집 까지 호박이 갔다. 그 복의 파장은 태풍을 불러일으킨다는 나비의 펄럭임 보다도 더 컸다.
호박으로 만든 음식도 가지가지였다. 일 순위 순수호박전을 비롯해서 호박 무침, 호박잎쌈, 갈치호박찜, 아나고호박탕, 바지락호박부침 등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호박과의 인연을 쌓았다.
“엄마, 올해도 호박씨 받아 두실거죠? 내년에 또 심게요”
“노란 호박 두 덩어리가 있기는 있다만 올해 것만큼 튼실할지는 모르겄다. 그래도 받아둬야지.”
노동의 시간은 떨어지는 해를 삼키는 붉은 바다의 혀 바닥처럼 날랬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니 엄마는 연신 호박 밭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 많은 작물 중에서 사연이 가장 많아서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는가 보다 생각했다.
갑자기 엄마는 말씀하셨다.
“호박아 호박아 서러워 마라. 미물로 태어났어도 나보다 낫다. 네 덕분에 여러 사람이 맛나게 먹고 많이도 웃었다. 더욱이 너는 세상사람이 보는 책에 글 한수를 남기지 않았느냐”
얼마 전 내가 호박얘기로 글을 써서 잡지에 나온다는 말을 듣고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뭐 그런 것도 있다냐며, 당신을 글은 못 쓰니 네가 잘 들었다가 써 두면 좋겠다고 하셨다.
“엄마, 엄마가 시인이지. 도종환 시인도 울고 갈 위대한 시인이야.”
엄마의 팔순잔치상에 드릴 문집 한 권 쓸 수 있는 역량이 내게 허락된다면 더는 소원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