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가는 '인생'이란 큰 덩어리에 갈라진 틈, 어떤 '사이'에 도착하는 것이다. - 박연준 작가의 산문집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에 나온 말이다. 휴가의 글자 休暇(쉴 휴/ 틈 가)를 보면 쉴 수 있는 틈이 있는 시간이거나, 틈이 생겨 쉬게 되거나 하는 경우임에는 분명하다.
기초 한자어로 ‘휴休’를 설명하는 책들을 보면 사람이 나무 그늘 밑에서 쉬는 모습이라고 그림으로까지 보여주니, 쉽게 기억되는 글자이다. 게다가 ‘休’의 또 다른 뜻과 음으로 ‘따뜻하게 할 후’라고 읽힌다는 것을 알고 나니, 정말 휴가야 말로 맘 편히 나무 밑둥 기대어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구나 싶다. 그래야 진정한 휴가休暇를 보내는 거구나 라며!
겉보기에 일초도 쉬지 않는 것 같은 나의 일상을 두고 많은 지인들이 걱정을 한다. ‘제발 집에 가서 푹 좀 쉬라고. 안 아픈 사람이 한번 누우면 큰 병 생기는 거라고.’ 고맙다. 학원 18년만 되돌아보아도 휴가라도 할 만한 시간도 별로 없었고, 특별히 찾지도 않았다. 올 여름 휴가 7월 말에 주어진 이틀간도, 학원에서 고등생들 보충을 했고, 딸이 궁금해서 당일치기로 서울행 한번 했다.
지난 7.30일, 카카오 스토리에 ‘당신의 지난 과거의 추억을’이란 문구로 한 편의 글과 사진이 올라왔다. 아, 아름다웠던 제주바다와 내 가족!
원래 성격이 ‘목표’없는 삶을 배제하는 편이라, 여행 역시도 특별한 목표를 세워야 움직인다. 아이들을 중고등 학교때, 유렵에서의 ‘홀로생활’을 결정한 것도 대학 후 부모 없이 혼자 살아야 하는 환경을 미리 연습해야 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아이들은 나의 계획대로 잘살고 돌아왔다. 갈 때는 두려움에 떨었겠지만, 돌아와서는 우리 부부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다음에는 꼭 엄마 아빠랑 함께 가서 투어 시켜줄게.” 이 말은 언제 떠오를지 모르는 무지개가 되었다.
2015년 7월 30. 딸이 중2, 아들이 고1, 아이들에게 제주도로 놀러가자고 했다. 뜬금없이 제주도 가자는 말에, ‘엄마가 왠일로? 엄마 시간이 되? 학원은 어떻게 하고?’등등의 사설이 있었다.
‘응 시간은 만들면 되고, 엄마가 계획이 있어서 그래.’로 여행은 시작되었다.
나의 계획이란 무엇이었을까. 골목길 많은 통로보다 한방향 일지라도 대로를 선택하는 나. 아들이 고등학교에서 외국어를 접하다보니,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외국생활처럼 살아보기’가 나의 관심사였다. 국제 관광객이 많은 제주도, 그곳에서 주로 외국인이 숙박한다는 게스트하우스에 예약했다. 남들처럼, 콘도나 호텔에서 자면서 아까운 시간과 비용을 사치스럽게 쓰느니,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게하)에서 자고, 그 대신 더 맛있는 거 먹고, 더 유용한 여행을 하자고 했다.
우리가 선택한 게하는 제주 공항과 제주 도심에서 가까워서 좋았다. 외국인 숙박이 많아서 내가 생각하는 여행 숙박지로는 제격이었다. 게하에는 영국인, 미국인, 중동인, 호주인, 중국인, 남아프리카인 등이 있었다. 하루를 온전히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만 말하기 시험무대에 올려보낸 나는 아이들의 행동을 주목했다.
‘명색이 뱃속부터 영어를 들어온 너희들 아니냐’
누가 가장 ‘내 목적’의 여행을 즐겼을까. 영어를 업으로 삼은 나? 아니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웠다는 아이들? 아니다. 바로 남편이었다. 평소에 영어를 독수리 타법처럼 한마디씩 내뱉고, L과 R, B와 V을 섞어서 말한다고 핀잔만 듣던 남편.
“당신은 학교 다닐 때 영어공부 아예 안한거야?” 라며 눈치만 받던 남편인데, 여행 3일동안 게하의 외국인과 대화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아이들과 나는 그런 남편을 보고 “아빠는 어쩌면 그렇게 얼굴이 두꺼워?” “당신은 진짜 특이하네. 그렇게 말이 하고 싶어?”라고 불퉁거렸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남편과 대화를 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동일하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어쩜 그렇게 상식이 많으세요? 정말 해박하세요. 모르는 게 없어요. 자동녹음기 같아요.”
20년을 살아본 내가 봐도 신기한 노릇이다. 같은 책을 봐도 나는 공부를 하는데, 남편은 그냥 읽는다. 나는 암기해야 되는데, 남편은 글과 내용을 즐긴다. 그러니 어찌 따라갈소냐.
게하에서는 저녁마다 간단한 만찬이 있었다. 한번은 남아프리카의 리처드 부부와의 대화에서 남편이 물었다. “그곳에 있는 펭귄은 잘 있나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남편의 옆구리를 찔렀다.
“당신, 아프리카에 펭귄이 어디있어? 말이 되는 말을 물어야지.”
그런데 리처드가 답했다. “펭귄들의 천국이죠. 그곳에 가 보았나요?” 정말 깜짝놀랐다.
남편은, 펭귄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면서 남 아프리카의 희망봉과 케이프타운에 대해 ‘할 말’을 다하고 있었다. 우린 넋 놓고 듣기만 했다. 단지, 나는 남편이 도움을 청할 때만 번역을 해주었을뿐, 머리가 멍멍했다. 외국어로 말하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 가족에서 남편은 한 순간에 영웅이 되었다. 항상 내 덕분에 아이들이 원하는 학교에 갔다고 남편이 자랑했는데, 알고보니, 남편의 숨은 재능이 더 큰 비결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한라산 등반길에 올랐다. 나의 두 번째 계획이었다. 물 한병가지고 올라간 길은 정말이지 내 인생에서 역대급 어려움이었다. 죽는 것이 이런거구나 할 정도록 가던 길을 되 돌아올 수도 없이 힘들었다.
남편은 나를 돌보느라 정상길을 멈추었고, 아들만 혼자서 백록담으로 향했다. 중간 산장에서 아들을 기다리면서 별의별 걱정이 일었다. ‘물도 없는데, 내가 미쳤지, 혼자 보내다니, 그 놈의 목표가 뭐라고 애들 잡네.’라며 후회를 했다.
몇 시간 뒤에 아들이 한 외국인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알고보니, 물이 없어서 물을 청했고, 정상까지 동행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해서 친구가 되었다고 말했다. 세상에나, 우리 아들을 잘 키웠네, 라며 산장으로 복귀한 아들으로 보며 눈물 콧물을 찍었다. 아들이 보내온 백록담 정상 탈환 인증사진을 보니, 더욱더 눈물이 쏟아졌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며칠 전 카스에 올라온 지난 추억의 글과 사진은 다시금 그때의 나로 데려갔다. 아이들에게도 공유했더니, 벌써 세월이 이렇게나 라며 어릴 때의 제 모습이 신기하다고 했다. 우리집의 두 영웅, 남편과 아들을 다시 얻었던 ‘제주도에서 외국인으로 살아보기’여행은 아마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 후로 한번도 제주도에 간 적이 없다.
딸이 말한다. “엄마 다시 한번 제주도 여행가면 어때요?” 당연히 가고 싶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짜로 다른 나라로 가서 내 속에 감춰둔 목표를 수행하고 싶다. 애들이 내 속을 알면 아마 기절하겠지. 코로나만 없다면 출발은 언제든지. 학원 일이 문제더냐. 아마도 우리 부부의 마지막 특별한 휴가일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