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19 박현수 <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이 그린 <독서여가>아시나요.
독서 후 여가를 즐기는 정선의 자화상이지요.
10여 년전 중학생 된 아들에게 ‘자기만의 방’을 마련해 가장 먼저 방 벽에 붙여준 그림입니다.
‘책이 있는 세상에서 네 꿈을 펼쳐라’라는 문구와 함께요.
이제는 제게 속삭입니다.
‘너의 꿈을 펼쳐라. 말랭이책방에서.’라구요.
오늘은 박현수시인의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 박현수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내가 읽던 구절은
숲의 어느 부분에 새겨져 있을까
자작나무 밑동쯤일까
잔가지 겨드랑이쯤일까
숲은, 인간의 말들을
어디쯤 철 지난 현수막처럼 걸치고 있을까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밑줄 그은 이 구절,
나무의 살갗에 새긴 문신은 흐려질까
한 땀 한 땀마다
솟아났던 푸른 울음들은 새살 돋을까
숲은, 가시철사처럼
파고드는 문장들을 뱉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제 소리를 갖지 못하는 이 구절은 사라지리라
매미, 쓰름매미,
숲에는 제 이름으로 노래하느니
숲은, 탈피 껍질처럼 텅 빈
인간의 문장들을 빗방울처럼 떨쳐 내리라
정선의 독서역가(네이버 이미지에서 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