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32

2022.5.19 박현수 <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by 박모니카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이 그린 <독서여가>아시나요.

독서 후 여가를 즐기는 정선의 자화상이지요.

10여 년전 중학생 된 아들에게 ‘자기만의 방’을 마련해 가장 먼저 방 벽에 붙여준 그림입니다.

‘책이 있는 세상에서 네 꿈을 펼쳐라’라는 문구와 함께요.

이제는 제게 속삭입니다.

‘너의 꿈을 펼쳐라. 말랭이책방에서.’라구요.

오늘은 박현수시인의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 박현수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내가 읽던 구절은

숲의 어느 부분에 새겨져 있을까

자작나무 밑동쯤일까

잔가지 겨드랑이쯤일까

숲은, 인간의 말들을

어디쯤 철 지난 현수막처럼 걸치고 있을까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밑줄 그은 이 구절,

나무의 살갗에 새긴 문신은 흐려질까

한 땀 한 땀마다

솟아났던 푸른 울음들은 새살 돋을까

숲은, 가시철사처럼

파고드는 문장들을 뱉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제 소리를 갖지 못하는 이 구절은 사라지리라

매미, 쓰름매미,

숲에는 제 이름으로 노래하느니

숲은, 탈피 껍질처럼 텅 빈

인간의 문장들을 빗방울처럼 떨쳐 내리라


5.19독서여가.jpg

정선의 독서역가(네이버 이미지에서 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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