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20 이기철 <이것만 쓰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자세여야 할까’ 고민한 시간.
수필가 피천득선생은 말했지요.
‘수필은 마음의 산책,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이 숨어있다’
‘수필은 번쩍거리지 않은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비단이다’
자신이 없어졌어요. 공부할 수 밖에요.
모호한 언어의 파닥거림이 오래된 내 몸의 무늬가 되어,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게 글을 쓰도록 나만의 생각을 담아볼께요.
오늘은 이기철 시인의 <이것만 쓰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이것만 쓰네 - 이기철 시인
내 언어로는 다 쓸 수 없어 이것만 쓰네
산방山房에 벗어놓은 흰 고무신 안에 혼자 놀다 간 낮달을
내게로 날아오다 제 앉을 자리가 아닌 줄 미리 알고 되돌아간 노랑나비를
단풍잎 다 진 뒤에 혼자 남아 글썽이는 가을 하늘을
한 해 여름을 제 앞치마에 싸서 일찌감치 풀숲 속으로 이사를 간 엉겅퀴 꽃씨를
내 언어로는 다 쓸 수 없어 이것만 쓰네
사월 달래 순이 묵은 돌덩이를 들어 올리는 힘을 본 것도 같은데
저를 좀 옮겨달라고 내 바지 자락에 매달리는, 어언 한 해를 다 살아버린 풀씨의 말을 알아들은 것도 같은데
아직도 흙 이불로 돌아가지 못한 고욤 열매의 추위를 느낀 것도 같은데
다 쓸 수 없어 이것만 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