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감자꽃은 하나도 없어요

2022.5.22 감자꽃잎의 개별성이 담아내는 고귀한 가치

by 박모니카

"당신이 올해는 도통 텃밭에 갈 시간이 없네. 나 혼자 가는거야 얼마든지 할수 있지만 심어놓은 감자들이 당신을 기다리더만. 시간 좀 내보소..."


땅도 모르고 씨앗도 모르던 내가 텃밭농사 짓는다고 쌀창고 드나드는 쥐방울처럼 왔다갔다한지 5년. 이제는 풀인지 옥수수 싹인지 정도는 구별할줄 알게 되었다. 작년에는 심는 작물마다 소위 대풍을 이루어 지인들과 나누어 먹는데 야박하지 않고 넘쳐날 정도였다. 게다가 고추 2두덕에서 나온 고추가루로 김장100여포기를 할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상 농사꾼이 된 듯 기뻤다. 당연히 올해 농사의 그림이 저절로 그려졌었다.


그러던 나였는데... 뜻하지 않았던 책방을 열면서 농사꾼으로서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1월 2월은 책방꾸미기에, 3월은 책방 열고 손님 맞이에 바쁘다보니 텃밭의 존재자체를 잊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텃밭을 다른이에게 넘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욕심이 한도 끝도 없는지라 남주기는 싫은 속내가 보였다. 다른 텃밭지기들이 전하는 이런저런 준비상황을 듣고만 있다가 결국 아픈 남편에게 모든 것을 넘겼다.


"당신이 안 움직이니까 큰일이야. 올해도 뭐 좀 심어야 되지 않아요? 로터리도 안한다고 하니까 있는 땅 놀릴수도 없고. 어떻게 좀 해봐요... 일단 난 책방때문에 정신이 없어."


결국 남편과 남편의 아픈 지인들 몇이 텃밭에 시작종을 울렸다. 어떤 이는 괭이가 되고 어떤 이는 갈퀴도 되었다. 어떤 이는 거둬 놓았던 옥수수대와 잡풀을 태우는 라이터도 되면서 작물을 심을 두둑 6줄을 만들어냈다.


어느 새벽, 지역장을 돌아보니 감자씨가 없었다. 기껏해야 남보다 십여일 차이 정도 늦은것 같은데 시중에 나온 감자씨가 없어서 또 남편의 지인을 동원해서 저 멀리 충청도 감자씨들이 새 세상으로 구경을 왔다. 감자씨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를 때가 바로 하루 전이었는데 손 큰 지인이 보내온 감자씨를 보고 '너무 많아서 어떻하지?'라며 또 맘을 동동 굴렀다.


할수 없이 일궈놓은 밭 여섯 두둑 전부, 감자씨를 심었다. 그러고도 절반 이상의 감자씨가 남아서 동네방네 소문냈다.

'감자좀 심으실래요? 씨 좋은거 있어요.' 어떤이는 말하길, 요즘 감자씨 없다고 하니까 당근마켓에 내어 팔면 되지 라고 했지만 말이 되는가. 거저 얻었으니 거저 나눠야지. 결국 봉사활동 함께 하는 이모님들과 책방의 어르신들에게 나눠드렸다.


올해 처음으로 남편이 말끔히 준비해 놓은 텃밭으로 갔다. 새봄이 왔음을 언제나 가장 먼저 향기로 나에게 알려주던 매화나무의 꽃들이 시름거리고 있었다. 작년에는 이해인 시인의 <매화앞에서>라는 시의 한 구절을 읊으며 봄을 맞았었는데...


- 먼길을 걸어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 앉아있네 -


깊은 눈 인사를 마치고 감자심을 만발의 태세를 갖추었다. 남편이 내어주는 구멍마다 감자씨를 쏘옥 넣는 나를 보던 남편은 시인같은 장단으로 추임새를 곁들었다.


"역시 당신이 있어야 땅도 말을 잘 들어. 당신 발자욱 소리를 다 알아듣고 절로 입을 벌려주네."


둘이 하기 힘들다고 남편지인들이 찾아와 나머지 감자씨를 모두 심고 진짜 농부처럼 새참도 먹었다.

그렇게 사월을 맞이했었는데 어느새 오월이 오고 이제는 또 제 자리를 넘겨주려 달력에 붙은 제 몸을 펄럭거렸다.


평소같으면 내가 바쁜 줄 알고 왠만하면 말하지 않을 남편이 어제 오늘 연속 내 눈치를 살핀다.


"당신 텃밭에 안 가볼랑가? 비도 안와서 물도 줘야하고. 뭣보다 감자꽃들이 슬슬 나와서 당신을 기다리더만."

"성당가서 미사한 후에 가볼까. 나도 보고싶네. 심어놓고 한번도 안갔으니. 그래도 당신이 다 잘 하잖아요."


어느새 텃밭에 새 식구들도 있었다. 정갈하고 세련되게 말뚝으로 영역표시를 한것을 보니 '흐음 역시 초보군'이란 묘한 웃음이 나왔다. 나의 소시적 모습인 듯하여. 이들도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낼까. 심어놓은 모종에 주렁주렁 달릴 열매들만 생각할 때니. 하긴 그 맘으로 일년가고 그렇게 또 세월도 가지.


오랫만에 얼굴을 보는 가경네 부부도 이제는 완전 농부차림새 였다. 텃밭하면서 저절로 제 2의 삶터지기를 찾았다고, 어디가서 굶어죽을 일은 없을거라 했다. 남편은 고추대 오이대에 줄을 대고 아내는 상추 등 잎채소에 물을 뿌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 몇 컷을 찍었다.


"원장님, 오늘 어떻게 시간이 나셨어요? 매일 남자 원장님만 오셨는데... 원장님네 감자는 꽃도 잘 피고요. 저희 감자는 꽃이 많이 없어요. 오늘 시 한편 나오는거 아니예요? "


이 말을 들은 남편의 명답이 들려왔다.


"가경어머니, 그 감자밭은 더 이쁜 꽃이 있으니 꽃을 굳이 피워낼 일이 없지요. 가경어머니보다 더 이쁜 꽃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감자밭은 각시가 안보이니 서로 각시 얼굴 대신해서 나타나 일하는 저한테 힘을 보태느라 피어난겁니다." 듣고보니 그럴싸하다고 시인이 따로 없다고 남편의 기를 살렸다.


감자꽃따라 다니는 내가 마치 나비인양, 꽃에 눈 맞추고 사진만 찍어도 자칭 각시바라기라는 남편은 그저 좋다고 흥얼거렸다. 옆에 있는 이들이 한 마디씩 했다. "정말 두분은 천상 부부입니다"


같은 감자꽃처럼 보여도 같은 꽃은 하나도 없다. 이 꽃 속에 숨어 있는 감자알. 같은 모양의 감자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더 사랑스러웠다. 감자밭이라는 집단성으로 바라보면 다 비슷해보여도 감자알 하나하나가 가지는 개별성을 바라보면 그들이 가진 이 고유한 가치를 어찌 다 말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권태응시인은 <감자꽃>에서 늘 말하지.

- 자주꽃 핀건 자주 감자

파보나마다 자주 감자

하얀꽃 핀건 하얀 감자

파보나마다 하얀 감자 -


올해도 파보나마다 하얀감자들이 줄줄이 올라올 것을 꿈꾸며 열심히 하얀 감자꽃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만 찍기 미안해서 물 통에 담긴 물을 분무기로 옮겨 감자싹과 꽃 위로 샤워(소낙비)를 내리주니 절로 만상에 웃음에 돋았다. 물방울을 덥석 껴 앉아 제 얼굴을 비비고 옆 친구의 얼굴도 닦아주며 감자 잎들이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왜 이제야 왔느냐고. 왜 이제라도 와줘서 고맙다고.


감자꽃 저멀리 남편의 그림자가 보인다

감자꽃 아래 피어난 고추꽃이 하늘을 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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