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28 정지용<향수>
책방에서 ‘시낭송잔치’를 준비했어요. 여고생부터 초로의 남편까지 “시를 소리내어 읽고 놀아봅시다”하니 10명이나 신청했네요. ‘시’에 대한 지식이 하도 부족해서 이런저런 행사를 기획하면 핑계 김에 공부 좀 하려나? 저의 욕심이 숨어있지요. 참가자에게 선물로 ‘윤동주, 백석, 정지용 시 필사책’ 드립니다. 이 아침에 박인수 김동원의 노래 ‘향수’를 들으며 시낭송을 기다리는 기쁨은 분명 신이 주신 축복입니다. 가까이 계시면 놀러오세요. 오늘의 시는 정지용<향수>. 봄날의산책 모니카
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