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104

2022.7.30 오세영<나를 지우고>

by 박모니카

어느 철학자는 말했죠. “여행하지 않는 자는 세상이라는 책을 한 페이지만 읽은 것과 같다.” 직접 여행할 시간이 부족해서 책으로 간접여행을 떠나는 편이지만, 늘 공허함이 가득하지요. 어제는 아들딸과 오랜만에 서울나들이.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었죠. 한여름날 푸른하늘과 하얀구름은 저의 글재주를 부끄럽게 하여, 사진에 모습을 담아 지인들에게 전하니 여기저기서 시인들이 탄생했지요. 낯선 도심의 더위는 작렬하는 태양의 빛으로 저를 샤워시켰지만 그마저도 즐기며 낯선골목의 풍경을 눈에 담았습니다. 낯선 곳에서 바라보는 나 자신의 일상, 새로운 영감을 얻어 귀향하는 출발에 새마음을 주었지요. 오며가며 구름보다 더 몽글몽글한 감성에 젖어서 구름조각들이 전하는 바람의 이야기도 들었구요. 새 출발을 앞두고 둥지를 찾은 아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왠지모를 허전함이 있었지만 이 또한 다시 못올 한여름날의 여행이었습니다. 한 지인이 보내준 ‘Chelsia Chan의 One Summer Night’를 들으며 잠이 들었답니다. 정말 한여름 밤의 꿈을 깨며 또 다른 새벽을 맞이합니다. 오늘은 오세영 시인의 <나를 지우고>를 들려드립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나를 지우고 - 오세영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나를 지운다는 것은 곧

너를 지운다는 것,

밤새

그리움을 살라 먹고 피는

초롱꽃처럼

이슬이 이슬을 지우면

안개가 되고,

안개가 안개를 지우면

푸른 하늘이 되듯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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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위에 이 구름마저 없었다면 어찌 견뎠으랴. 명절 대 이동 같았던 차량행렬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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