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31 도종환<배롱나무>
제 아파트 현관앞 정원에는 배롱나무 한그루가 있어요. 12년차 살고 있으니 적어도 12번의 진분홍 꽃을 본 셈이지요. 백일동안 피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랫동안 피어있어 백일홍나무라고도 합니다. 요즘 배롱꽃의 색과 품은 절정의 첨탑이지요. 한 지인이 보내준 도종환시인의 <배롱나무>를 읽으며, 오늘은 이 친구를 만나볼까 했지요. 필연이었던지, 새집을 구하러 다니던 산등성 길목에 화사하게 피어난 배롱나무는 푸른구름의 배필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어 지인께 보내니 더 우람하고 화려한 선운사 배롱나무 사진을 보내주었죠. 오늘은 7월의 마지막날, 당신의 시간 속에 붉은 배롱나무 꽃을 넣고 주문을 걸어보세요. “나도 너처럼 100일동안 꽃피고 싶어라. 몸(身)만 안아주는 포옹(抱擁)이 아니라 마음(心)까지 안아주는 포용(包容)으로 꽃피고 싶어라.”라구요. 오늘의 시는 도종환 시인의 <배롱나무>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배롱나무 – 도종환
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는
많은 나무들 중에
배롱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뜨거울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 놓고는
가녀린 자태로 소리 없이
물러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남 모르게 배롱나무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뒤로 길 떠나면 어디서던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지루하고 먼 길을 갈때면
으레 거기 서 있었고
지치도록 걸어오고도 한 고개
더 넘어야 할 때
고갯마루에 꽃그늘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기도 하고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길로 접어 들면 건너편에서 말없이
진분홍 꽃숭어리를 떨구며
서 있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만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어
혼자 외딴섬을 찾아가던 날은
보아 주는이도 없는 곳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혼자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꽃은 누구를 위해서 피우는게 아니라고
말하듯 늘 다니던 길에
오래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늦게사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부터
배롱나무에게서 다시 배웁니다
사랑하면 보인다고
사랑하면 어디에 가 있어도
늘 거기 함께 있는 게 눈에 보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