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6.21 텃밭이야기 9화
"형수, 올해 빨간 양파 수확하면 겨울에 연탄기부금 마련 바자회때 기부할께요. 양파를 사실분들은 모 일에 직접 오세요. 10알에 무조건 1만원입니다."
한달 전, 행복텃밭 왕고참이자 진짜 농꾼 대준씨가 텃밭밴드에 올린 메시지는 나를 감동시켰다.
삼년 전 처음 만난 대준씨는 강렬한 첫인상 때문에 선뜻 다가서는데 눈치를 봤다.
눈도 부리부리하고, 건네는 말도 괄괄했다. 양념하나 되지 않고 담겨나온 겨울철 동치미 속 무우같은 뚝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 동치미 맛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리라. 나이 차이도 많아야 한두살 일 텐데 '형수'라고 불러주는 남편의 지인 중의 한사람. 이제는 남편보다 내가 더 친하고 싶은 사람이 바로 대준씨다.
대준씨네 텃밭은 행복텃밭에서 가장 우수한 밭이다. 기르는 작물마다 수확이 좋고, 땅과 하늘의 성질을 누구보다 잘아는 농꾼이다. 부지런에 있어서도 어떤 회원들보다도 앞서있고, 뿌리는 씨앗들 덕분에 공짜로 모종을 수여받을 수도 있다. 작년에도, 대준씨가 뿌려놓은 들깨, 당근씨에서 나온 모종으로 나도 역시 덕을 보았다. 그러다보니, 텃밭에가면 언제나 대준씨네 밭을 살펴보기 바쁘다. 소위 컨닝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날6.21일. 오늘일정에 빼곡히 써 놓은 할일 중 가장 먼저인 것은 대준씨의 빨간 양파 수확현장에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맛있는 양파를 일부러라도 사러 가는판에, 자신의 첫 양파수확을 기부한다니, 빠질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어젯밤 만보걷기를 무리했는지, 밤새 왼쪽 허벅지부터 다리까지 찌르르르, 여름날 매미들이 찾아온듯 괴로웠다. 그래도 대준씨의 통큰마음을 얼른 가서 받아와야지 하는 맘 뿐이었다.
겨울철 독거노인을 위한 연탄마련 기부금 행사는 올해로 5년차다. 3년전부터 바자회 형식으로 학생들, 학부모들과 먹거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그 수익금으로 연탄을 마련한다. 텃밭의 작물들을 팔아서 기부금에 보태는 것도 하나의 활동이다.
올해도 10월경쯤 바자회를 준비할까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그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그래도 그때쯤이면 모든 일상에 평화가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올해의 연탄 준비는 약 1200장, 수혜자 4가구수 분량만큼이다. 5년전 연탄 한장에 450원 하던 것이 해마다 올라 작년에는 750원 이었다. 1000장을 기준으로 75만원이 필요했다. 바자회에서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어서 이 금액은 충분히 달성했다. 어떤 학생들은 자신의 저금통을 가져오기도 하고, 어떤 학부모는 기부 물건을 가져오기도 한다. 올해는 대준씨의 양파기부가 특별한 기부스토리로 장식하게 됐다.
대준씨의 짝꿍, 미소가 아름다운 희야씨가 담아준 양파봉다리를 챙겨들었다. 텃밭 가족에서 9만원의 양파가 팔렸고, 대준씨가 1만원을 추가해서 총 10만원의 기부금이 마련되었단다.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는지, 올해 목표했던 1200장을 늘려서 다섯가구 것을 준비할까 하는 오지랖이 앞선다. 어찌됐든 올해 연탄마련을 위한 기부금의 첫 테이프 절단식이 거행된 셈이다. 이제부터 내 작물들도 기부장터로 나갈 만반의 준비를 시켜야겠다.
누가 하지감자라고 했는지, 일요일인 오늘, 하짓날, 땅속 감자들이 기다렸다.
행복텃밭에서는 대부분의 가족들이 감자를 심었다.
나도 역시 강원도산 수미 감자라고 이름 붙여진 감자씨를 심었다. 감자를 심고, 감자꽃도 따보고, 번성하던 감자 잎과 줄기도 세세히 보았다. 신기하게 하지날이 가까워오면서 시들어가는 감자 잎과 줄기를 보면서 자신의 소명을 다한 생물체에게 경외심을 가졌다. 저 아래에는 정말로 감자가 있을까? 얼마나 많이 달렸을까?
남편이 따라오지 않아서 감자수확을 혼자하기엔 맘이 무거웠다. 옆밭의 미옥이 언니는 감자를 캐고 고구마를 심겠다고 고구마순을 준비했다. 얼마나 숨어있을까 궁금하여, 언니의 호미질에 눈독을 들였는데, 와~~ 호미 한번에 씨알굵은 감자 두서개가 우두둑 걸려나왔다. 언니와 나는 동시에 마을을 들었다 놓는 고함소리를 질렀다. 바로 옆두렁 가경이네 감자는 벌레 먹은 것이 많다고 버린것도 제법인데, 언니것은 어찌나 토실거리는지. '이럴 때가 아니지. 내 것도 한번 파 봐야지.'하며 호미를 가지고 내 감자밭으로 갔다.
푸른잎과 하얀꽃의 영화는 온데간데 없고, 제 살을 모두 감자 알에 준듯이 초연하게 쓰러져 있는 누리끼리한 감자줄기를 거둬어냈다. 코알라님이 감자캐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Y자로 흙을 살살 제켜야 된다고 했다.
감자줄기 하나를 뽑는 순간 갓난아이 주먹만한 감자 한알이 딸려 올라왔다. '오 마이 갓. 내 것도 있어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호미질 십여차례에 감자 알 20여개를 건졌다. 딸래미의 서울행이 예정되 있어서 호미질을 멈추고 낼 아침 감자수확을 예고하며 돌아왔다.
내일 새벽은 강원도산 수미감자 수확의 결전의 날. 나도 감자 첫 수확품을 기부금으로 낼 것이다. 좋은 감자만 골라 지인들에게 강매 할 것이다.
"얘들아, 올해도 연탄기부금 마련해야한다. 너희들의 따뜻한 기부의 손길을 기다린다. 공짜 아니야. 내가 키운 무공해 수미감자, 아무나 주는게 아냐. 너희들만 주는거니, 빨리 신청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