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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편지117

2022.8.12 장석남<옛노트에서>

by 박모니카

어제는 군산에 내린 장대비와 그 피해상황이 하루종일 뉴스거리였지요. 책방은 무사하냐고 묻는 지인들에게, 바위보다 더 튼튼히 잘 있다고, 아래마을이 어떨지 걱정된다 했지요. 앞에 보이는 월명산이 온통 짙은 안개에 쌓였고 내리는 대찬 빗방울의 머리는 정말 대군을 몰고 달려오는 말발굽처럼 보였습니다. 창밖의 비를 보며 정재찬교수의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의 한 페이지를 열었지요.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의 키팅선생님 말이 써있더군요. “의술, 법률, 사업, 기술, 이 모든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란다.” 저도 키팅처럼 생각하지요.

책 속에 써있는 장석남시인의 <옛 노트에서>를 오늘의 시로 들려드립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옛 노트에서 – 장석남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8.12옛노트에서.jpg 둥근 달이 내려 앉아 슬픔을 가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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