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h My Life

헥사곤시스터의 밥상 위에 차려질 “맛있는 시”

2020.9.7 브런치 매일쓰기 10

by 박모니카

오늘로서 나의 시 필사는 99번째의 이름표를 달았다. 100번째보다 더 채워진 듯한 99번의 필사를 마치고 며칠 전 논의 했던 시 필사팀의 후배들과 만남을 정했다.


‘오늘은 모두 만나서 우리가 내 놓을 시집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안을 논의 해야지’


혼자서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나를 보며, “그래, 아직도 안 늙었어. 할 수 있어. 어차피 흘러가는 인생, 무조건 해보는 거지.”라며 거울을 보며 되뇌였다.

점심때, 모임을 함께 하지만 필사팀에는 오지 않은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언니, 밥 먹자. 비도 오고, 이럴 때 뜨끈한 국물이 먹고싶네.”

“좋아, 갈비탕 사줄까. 김치찌개도 맛있어. 와라.”


배부르게 밥을 먹고, 저 멀리 다가오는 먹구름 속 태풍의 잔상을 유리창 너머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마셨다. 그러면서 저녁에 있을 시 필사팀과의 만남을 얘기했다.


“언제 만나? 나도 가볼까?”

“저녁에. 너도 와.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수다떨게.” 그러면서 생각했다.


‘너도 낚였다. 시집 만드는데 꼬셔야지.’


사무실에 돌아와서 그 동안 인상깊게 읽었던 시집들을 펼쳐 놓았다.

그 중 하나가 EBS FM <시 콘서트> 방송작가이자 동화작가인 정진아 작가의 <맛있는 시>이다. 이 책을 읽고서 블로그에 시집에 대한 소감을 썼었다. 또 정진아 씨와 블로그 이웃도 맺어서 종종 그 집을 방문하며, 올라온 시를 새겨 읽는다.


저녁 만남이 있기 전, 사무실 아래 커피집에 내려갔다. 같은 빌딩에서 개업한 지 8개월이나 되었는데, 한번도 가지 않았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늘 마음에 있었다.


나는 왜 이럴까. 대한민국 모든 소상공인의 가게 집을 다 가봐야 할 것 같은 요즘 시대, 오며가며 가게 안에 보니, 사람이 없는 때가 많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이구 이 오지랖을 어찌할꼬!


“얘들아, 오늘 모임 장소를 바꾸자. 이왕이면 소상공인 가게에 가서 한잔이라도 팔아주자.”

커피가게 주인장은 9시까지만 한다고 했다.


“제가 8시 30분부터 약 한 시간 정도 모임이 있는데요,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기다릴께요.”

왠지 내 나이는 됐을 법한 주인장의 미소를 받고 대 여섯 권의 책을 들고 내려갔다.

보기만 해도 마음 든든한, 멋진 후배들 다섯 명이 나타났다. 18년차의 인연이다.

필사하고 있는 시를 책으로 내자는 나의 제안을 다시한번 전했다. 지난번 세 명이 모였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에너지로 응답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역시 시작하길 잘했어. 언제 우리가 이렇게 재미난 얘기를 하며 살아갈까. 바로 이 순간이 최고로 재미난 시간이지.’

지역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는 후배에게 앞으로의 과정을 전담시켰다.

“너는 직접 시도 쓰고, 문집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으니, 지금부터 너가 총 책임자야. 나는 아이디어를 주었으니, 절반의 시작을 해 준거다.”

엉겹결에 책임자가 된 미라는 이미 맘속으로 준비해온 사람처럼, 회의 진행을 잘도 이끌었다.

언제까지 자신들이 좋아하는 시를 추려야하는지, 어떤 형태로 시집을 구성해야하는지.

또 늦어도 언제 책이 나오도록 시간을 배정해야 하는지. 인쇄는 어떻게 맡겨져야 하는지 등.


10월의 마지막 밤 까지 각자의 시를 선택해서 다시 만나기.

최소 40여개를 골라서 그 중에서 중복되는 것을 또 고르고 합의하기.

각자의 영역을 어떤 식으로 구성 할지를 생각하기 등등 뜻하지 않은 많은 얘기가 오고갔다.

“언니, 나는 그림도 못 그리고, 언니처럼 그림 잘 그리는 딸도 없어.”

“난, 아무것도 안 그리고, 그냥 시를 읽은 나의 느낌을 쓸거야.”


이때 다른 후배가 조언했다.

“솔솔이 너는 영어선생이니, 시의 느낌에 어울리는 멋진 영어명언을 넣으면 어때? 덕분에 우리도 한번씩 영어문장 읽어보고.”

“와우, 맞다 맞다. 진짜 좋은 아이디어다. 딱 좋네.” 모두 일체의 함성을 올렸다.

“자, 얘들아, 이제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어. 우리 모임이 8명인데 시 필사를 5명만 하잖아. 근데 나의 욕심은 모두가 참석하면 더 좋겠다 싶었지. 물론 현실적으로 힘든 경우지. 하지만 오늘 여기 나온 지우만은 꼭 같이 했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능력있는 최고의 인텔리. 같이하자.”

“그래, 지우 언니, 같이하자. 우리도 지금부터 새잽이로 시작하는 꼴이야. 책으로 만든다 하니까 그냥 쓸 때하고 맘이 달라졌어. 지금까지의 시들을 다시 봐야 될 것 같아.”

“언니, 난 글 쓰는 게 가장 무서워. 근데 도와주면 해볼게.”

그럴 줄 알았지.

오늘부터 우리는 독수리 5형제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달콤한 집을 만드는 꿀벌들의 완전체, 바로 ‘헥사곤시스터(Hexagone Sister)이다.


지금 이 순간 시집 ‘맛있는 시’를 만진다.

'외롭고 힘들고 배고픈 당신에게' 차려준 맛있는 시 밥상 이라는 글귀가 참 좋다.


우리 여섯 명은 어떤 시를 읽으며 각자의 삶을 반추해볼까.

시월의 마지막 밤에 펼쳐질 우리들의 밥상 위에 어떤 시인들의 시들이 올라올까.

더 맛있게 꼭 꼭 씹어 먹으며 내 몸으로 채워질 시를 고르는 나, 그리고 후배들을 바라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깨어있고 싶어요, 메모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