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부터 시작된 저 탄수화물 다이어트. 물귀신 작전처럼 딸과 남편을 끌여들였다. 게다가 1일 1식 탄수화물 섭취와 주 3일 이상 만보걷기, 물 1.5리터 이상 마시기 등을 필수과제로 제시했다.
그 덕분인지 딸과 나는 체중의 변화가 감지되었다. 아침마다 체중계를 오르내리며 미묘한 수치변화를 체크하는 나를 보면서 남편은 늘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도, 이왕 할거면, 확실히 해야되. 특히 군것질 하면 도루묵이야. 정말 천운이 있는거지, 누가 당신 몸매보면 뇌졸중, 뇌경색으로 두 번이나 쓰러진 사람이라고 하겠어요. 진짜, 누군가 보호하고 있구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체중관리 해야되.”
매 순간 잔소리를 들어도 남편은 늘 미소로 답했다.
아이들은 2학기를 맞이했어도 여전히 집에 있었다. 두 달 전 같았으면 그래도 아침에 밥해놓고, “늦잠자지 말고 꼭 챙겨 먹어라.”라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최근에는 내가 봐도, 너무 이기적으로 내 몸만 빠져나갔다.
몇가지의 핑계는 있었다. 일단, 두 아이들의 늦잠이다. 또 아침식사를 다이어트 식단에서 빼놓은 내 목표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서운해하는 사람, 바로 남편이었다.
오늘 아침, 냉장고에 놓인 반찬 몇 가지를 챙기면서 “이건 점심때 먹읍시다. 요즘 매일 점심 외식을 했더니, 진짜, 먹기 싫네. 오늘은 사무실에서 밥해 먹어요.” 남편은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려그려 하면서.
한 달 중 가장 중요한 날, 선생님들의 급여를 보내야 하는 날. 9월의 시작에도 또 적자가 생겨서 며칠 전부터 머리가 아팠다. 게다가 한달 전 사직한 강사의 퇴직금까지 준비해야 되었기에, 아침부터 은행도 가고, 지금까지 입급된 학생들의 교육비도 확인하다보니, 어느새 점심 12시가 넘어 1시가 되어갔다.
“학생들이 곧 올텐테, 밥해먹을 시간이 없네. 우리 간단히 라면하나 끓여서 먹고 중간에 맛있는 간식 먹게요. 선생님들 월급 보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 당신 배고프죠.”
“무슨, 당신이 배고프겄네. 하루 한 끼만 먹으면서.”
어린 학생 두 명이 일찍오니, 오늘 학원의 운영이 시작된 꼴이었다. 참새들처럼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 초등 1-2학년 때의 모습이 생각났다. 마치 할머니가 되어 손녀들에게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 맘으로 담당샘이 오기 전까지 함께 놀아주었다. 3시부터 시작된 나의 화요일은 밤 9시 되어서야 끝이 났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남편이 사무실에 없었다. 힘들 때 쉬라고 만들어준 쪽방에 가보니,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당신, 자요. 나 수업 끝났는데. 어디 아파?”
“어? 끝났는가. 오늘도 고생 많았네. 여기와서 조금이라도 쉬었다가 가세. 배고프지.”
그 말에 생각해보니 점심에 끓인 라면 두 개를 나눠 먹으면서도 라면은 몸에 안 좋다고, 이것은 가장 저질의 탄수화물이라고 궁시렁거리며 몇 젓가락 뜨다 말았었다. 배가 고픈 건 바로 남편이었다.
“우리, 집에 가는 길에 백숙 끓이게 닭 한 마리 사가게요. 애들도 보나마나, 뭔 밥을 먹었것어. 금방 끓여 먹읍시다. ”
“시간이 너무 늦었는데, 당신 먹어도 되? 사가기는 하는데, 당신도 다이어트 약속 지켜야하고. 내일 점심때 먹지.”
말은 안 하지만 나 때문에, 그 놈의 다이어트 때문에 남편은 밥 다운 밥을 먹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나 미안하고 염치없던지.
“아이고, 이 나이에 다이어트 안 하면 어때. 당신이나 나를 보며 살지, 누가 내 얼굴 몸매 보고 살아줄 것도 아닌데. 당신 배고픈데, 내가 맛있게 빨리 요리할게. 애들에게 전화해봐요. 먹고 싶은 거 또 있는지.
닭 두 마리를 샀다. 하나는 백숙용, 또 하나는 닭 도리탕용.
손이 빠른 나는 말 그대로 뚝딱뚝딱 백숙을 만들었다. 팽이버섯과 콩나물을 데쳐 닭 국물에 넣었다.
커다란 하얀 접시에 푸짐하게 대령했다. 10시 10분이었다.
딸래미는 ”엄마 이 시간에 먹어도 돼?“ 했고, 아들은 “오랫만이네요. 같이 먹는 것이.”라고 했다.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남편도 시원하게 잘 끓여졌다고 맛있네를 연발하며 먹었다. 식탁 밑에 있던 복실이도 입맛 다시며, 우리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우리집 요리중 가장 좋은 가성비는 닭요리고만. 복실이까지 다섯이가 모두 포식을 할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