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281

2022.12.10 이기철<밥상>

by 박모니카

책방오픈 한 달 되던 춘사월 어느 날 찾아온 책방 손님이 글 하나를 보내주셨죠.

-대찬 기백에 낭만을 아는 모니카님이 향파 언덕에 멋진 보금자리 틀었더라.

오가는 길손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니 머지않아 석치산에 산벚이 활짝피리.-

저는 이 말이 어찌나 좋았던지, 제가 정말 월명산의 여신인 줄 알았다니까요. 우습죠? 그런데요...

글과 말이란 사람을 일으키기도 하고 눕히기도 해요. 부족한 저를 벌떡 일으킨 이 글을 따라 저는 말랭이마을에서 열심히 일년을 살았습니다. 오늘도 성실과 끈기 하나 믿고 살아가는 제 삶을 볼 수 있는 날입니다. 저와 문우들의 에세이 출간을 자축하는 작은 파티를 열어요. 가까이 계시면 무조건 오세요. 같이 따뜻한 떡도 먹고 더 따뜻한 책도 드립니다. 무엇보다 제 책 <오래된 미래를 꿈꾸는 세상사람들>속의 주인공인 말랭이 마을 사람들이 피워낸 꽃처럼 예쁜 이야기도 들려드려요. 또 하나 12.10-11일은 올해 말랭이마을골목축제 마지막주간입니다. 마을분들이 만드는 파전과 막걸리도 드실 수 있어요.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오늘의 시는 이기철 시인의 <밥상>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밥상 – 이기철

산 자(者)들이여, 이 세상 소리 가운데

밥상 위에 놓이는 수저 소리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있겠는가


아침마다 사람들은 문 밖에서 깨어나

풀잎들에게 맡겨둔 햇볕을 되찾아 오지만

이미 초록이 마셔버린 오전의 햇살을 빼앗을 수 없어

아낙들은 끼니마다 도마 위에 풀뿌리를 자른다


청과(靑果) 시장에 쏟아진 여름이 다발로 묶여와

풋나물 무치는 주부들의 손에서 베어지는 여름

채근(採根)의 저 아름다운 殺生으로 사람들은 오늘도

저녁으로 걸어가고

푸른 시금치 몇 잎으로 싱싱해진 밤을

아이들 이름 불러 처마 아래 눕힌다


아무것도 탓하지 않고 全身을 내려놓은 빗방울처럼

주홍빛 가슴을 지닌 사람에게는 未完이 슬픔이 될 순 없다


산 者들이여, 이 세상 소리 가운데

밥솥에 물 끓는 소리보다 아름다운 것 또 있겠는가

말랭이벽화<밥상>
말랭이벽화<막걸리>
말랭이벽화<김수미집>
말랭이벽화<마을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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