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282

2023.1.24 강형철 <그리움은 돌보다 무겁다>

by 박모니카

군산에는 600년 된 팽나무가 있습니다. 우리 땅인데도 주소가 미국명인 미군기지 바로 옆에 있지요. 이 땅도 곧 미국소유가 된다고 해서 팽나무지킴이를 자처하는 시민들이 애를 쓰고 있지요. 그들 중 지인이 있어 얼굴도 보고 팽나무보며 새 마음을 고백할 겸 찾았습니다. 여느 겨울나무처럼 실핏줄같은 자신의 여린 가지까지도 모조리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허리에 커다란 지팡이 두 대를 매달고 있더군요. 일년에 몇 번은 찾아오지만 올 때마다 주변의 지형이 달라져서 팽나무의 위태로움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흙과 나무에도 영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저에게는 먼 옛 시간부터 지금까지 나라와 민족의 모든 역사를 지켜보며 희노애락을 간직하고 있을 팽나무가 신비를 넘어 신령스럽게 보입니다. 지인이 타 준 커피한잔 들고 무성하게 자란 대나무 숲도 거닐고, 서너 골 되는 텃밭 마늘 양파싹도 만져보는데, 팽나무 어른에게 인사왔다며 손을 흔드는 사람. 얼마 전 출판사 봄날의 산책이름으로 시집을 출간한 강시인님이었어요. 마침 차 속에 시인의 시집이 있어서 드렸더니 팽나무를 향해 당신의 시집과 함께 올해 소망을 전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연로(年老)의 트랙 위에서 서로 손을 잡고 ‘함께가자’ 라고 외치는 시인과 팽나무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강형철시인의 <그리움은 돌보다 무겁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그리움은 돌보다 무겁다 - 강형철


내가 당신을 사랑할 때는

당신이 사랑하는 나조차

미워하며 질투하였습니다.

이제 당신이 가버린 뒤

고생대 지나 빙하기를 네 번이나 건너왔다는

은행나무에 기대어

견딘다는 말을 찬찬히 읊조립니다.

무엇이 사라진 것인가요

당신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내가 지워진 것도 아닌데

심연으로 가라앉는 돌멩이

앞서 깊어가는,

저기 그리움이 보입니다

1.24 팽나무1.jpg 군산시 선연리에 있는 600년 팽나무 보호수 입니다
1.24팽나무2.jpg 모진 풍상을 겪고 서 있는 나무의 허리춤에 이제는 장대가 놓여있네요
1.24팽나무강형철.jpg 강형철시인의 시집<가장 가벼운 웃음>, 강시인은 팽나무지킴이 활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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