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h My Life

정상으로 작동되었습니다

2020.9.15 브런치 매일쓰기 15

by 박모니카


"몸은 파이브 G시대에 살면서, 정신은 계속 아날로그만 원하니 요즘 애들이 꼰대라고 할 만하지. 우리도 이참에 바꿉시다. 큰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왔다갔다 할 때마다 맘에 걸려 가지고,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몇 년 갔네." 처음으로 하이패스 단말기를 달아야겠다고 결정하면서 남편은 말했다.


2학기가 시작되었어도 여전히 고등3.5생인 딸이 서울에 있는 자취집을 가봐야겠다고 했다. 몸은 집에 있어도 매달 나가는 월세도 아깝고, 바람쐴겸, 서울 구경도 할 겸, 갔다오고 싶다고 했다. 마스크 잘 쓰고 다닐테니 걱정 말라고. 때마침 아들도 동기들과 논의 할 것도 있고, 추석 전에 오겠다고해서 우리 부부는 촌 놈 서울여행기 한번 써보자고 했다. 생각해보니, 매일이 그저 그런 시간 속에서 살아온 우리들.


"그래, 까짓것, 설마 코로나 걸리겄냐. 가자."


사실, 주말을 앞두고 학부모들께 '꼭 집콕해주세요, 손발 잘씻기, 마스크 쓰기' 등을 부탁한 내가 멀리 움직이는 것도 맘에 걸렸다. 그런데, 애들을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하는 것은 더욱더 불안했다.


딸은 오랫만의 출타로, 바리바리 먹거리와 입을거리 등 살림을 챙기면서, 금방이라도 학교정문으로 날아갈 것 같이 허밍을 부르며 상경준비를 했다.

나는 아침 일찍, 빨래 한바퀴 돌리고, 오후 수업을 아침으로 옮기고, 남편은 지인이 준 당근 모종과 무씨를 심으러 텃밭으로 갔다.


"모두 오후 1시에 모이기. 안 모이면 오늘 안간다."


"엄마, 운전 제가 할께여. 엄마는 편하게, 음악 듣고."아들이 운전대를 잡았다.

이제는 마음의 걱정거리가 덜 할 만큼, 아들의 운전은 자연스러워졌다.


"역시, 너는 엄마 집안 유전자야. 운전도 잘하네. "

별걸 다 갖다 붙인다고 뒤에 있던 남편과 딸은 동시 다발로 한마디씩 했다. 아들을 너무 사랑한다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탈 때마다, 늘 고 김대중 대통령이 생각난다. 생전에 호남인들에게 서울을 직접 연결하는 다리를 완공했으니, 매번 경부만 이용하여, 대전까지 왔다가 옆길로 새어야만 했던 운전자들에게는 크나큰 편의시설이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노고는 사라진지 오래다. 상경길이 늘 막히기 때문이다. 세시간 정도를 예상 했던 길이 다섯시간 걸렸고 인천에서 또 서울로의 여정마다 막히지 없는 곳이 없었다.


다행히 이런 여정에도 가을의 푸른 하늘 만큼은 가히 보정이 필요없는 청명함 자체였다. 누우면 금방이라도 깊은 잠으로 빠져 들어갈 것 같은 푸근한 구름. 여름 장마비에 우울해진 얼굴을 비춰도 맑은 정기를 가득 부어 줄 것 만 같은 하늘. 이산 저산 경계마다 굵은 고딕체 윤곽선을 대어 풍경의 원근법이 알게 하는 공기입자들.

참 좋았다.


딸 집에서 일박을 하고 아침 7시에 출발했다. 서울사람들의 출근길, 교통지옥을 염려하는 딸을 뒤로 한채 네비게이션의 낭낭한 목소리에 의지하며, 동부간선도로를 따라 중랑천을 느리게 느리게 스쳤다. 말 그대로 출근길 교통 정체의 현장 속에 있었다. 부부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결혼 전 30대 때는 어떻게 살았는지.


한남대교를 들어서니 도로위와 이정표에 '부산'이라고 써 있있다. 여기부터 만남의 광장까지 또다시 30여분.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머니, 커피나 한잔 하자고 했다. 남편이 운전을 못하니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기에. 생각해보면 운전을 즐기는 나, 고속도로 휴게소를 좋아하는 내가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싶었다.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기 전, 휴게소에 들렀는데, 갑자기 남편이 말했다. 우리도 '하이패스'길로 한번 가보자고.


"당신 눈도 잘 안보이는데, 톨게이트에서 일일히 현금 받는 레인을 찾아야 하고, 요즘은 하이패스길이 더 많으니, 이 참에 단말기 사서 달고 가세."


그랬다. 하이패스 단말기를 다는 차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의 손길이 사라지고, 그러면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게되고, 우리라도 그냥 다닙시다 했던 때가 십 수년이 되었다.


그사이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는 멈춰지거나 느려진, 그래서 더 불편해진,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거도 아닌 세상의 원반위에 있었다.


"그래요. 이제는 답시다. 남들처럼은 하고 살아야지. 속도위반 10킬로 넘었다고 날아오는 고지서가 세 장인데, 이래도 쓰고 저래도 쓰고, 단말기 어떻게 다는지, 얼마인지 당신이 다 물어보고 달고 와요."


남편은 가져온 단말기를 설명하고, 얼마를 주었다고 말하고, 나는 설명하지 말고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하고, 운전이나 하겠다고 하고... 우리들의 모습은 마치 덤앤 더미 같았다.

그래서 한 참을 웃었다.


"가볼까? 근데 이거 작동 되는거 맞나? 안되서 싸인렌 소리나면 어떻하지?"

"나도 모르니, 일단 가보세. 지나가봐야 알지."


- 정상작동 되었습니다 -


하하하! 정상작동이라네.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것 같아. 이대로 가서 군산 톨케이트 지날 때 요금이 자동 정산 되는 거구나.


아니, 이렇게 쉽게 지나가면 되는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 얼굴 한번 보고 '수고하십니다' 말 한마디 하고 싶어서 그 긴 세월동안 느리게 느리게 살아왔단 말인가.


내려오는 동안 하이패스 단말기가 주는 이 가벼운 즐거움을 만끽했다. 시대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니, 몸이 느릴수록 정신만이라도 빠르게 대처하며 사는 방법은 기계에 익숙해지는 것 밖에 없다느니 하면서.


도착지의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들려온 말,

'정상 작동 되었습니다. 요금은 ooo 이며, 잔금은 ooo입니다.'


하이패스를 달리기는 성공했다. 그런데 마음 한쪽이 쬐끔 서운했다.

그곳에 인사를 나눌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1600097737155.jpg?type=w1

대표

사진 삭제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4일간의 글쓰기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