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296

2023.2.8 황지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by 박모니카

봄이 오니 꽃이 필까요, 꽃이 피니 봄이 올까요. 입춘을 앞뒤로 연일 냉기온이 풀어지니 마음도 덩달아 부드러워집니다. 감기로 다소 접혀있던 맘이 풀려 가까운 벗들과 이른 봄맞이 점심을 먹었지요. 산 너머에서 오는지, 강 건너에서 오는지 모를 꽃과 나무 향기를 쫒아 산책했네요. 목련꽃 봉오리, 매화꽃, 천리향꽃, 황금귤나무, 하얀철쭉, 꽃기린, 전나무, 버드나무, 느티나무 따라 일부러 사뿐사뿐 걸었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일찍 겨울잠에서 깨어나며 겁먹은 눈으로 새봄을 보려는데 저의 숨소리, 옷자락마저도 태풍처럼 느껴질 수 있잖아요. 그러니 걷는 내내 조심하고 배려해야지 싶었어요. 돌아오는 길에 올해 처음으로 채취한 고로쇠물을 얻었습니다. 봄의 일번지 매화꽃보다도 먼저 깨어나 '봄을 만드는 나무'가 고로쇠나무라고 하네요. 겨우내 깊은 땅 밑 어느 곳까지 뿌리를 내려야 그리 많은 물을 모으는지 이른 봄이면 고로쇠 수액 채취가 한창이지요. ‘뼈에 이로운 나무’라고 한자어로 골리수(骨利樹)라고도 한다네요. 감기가 멈추지 않아서 한잔 마셔보니 달콤하고 신선해서 냉큼 가져왔습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 나무가 준 물을 마실 수 있는 이 순간이 축복입니다.

오늘은 황지우 시인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 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 피는 나무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침편지 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