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306

2023.2.18 박노해 <모내기 밥>

by 박모니카

보약 중의 상약은 ‘밥’이라고 하지요. ‘밥이 하늘이요 밥 짓는 손이 하느님이다’라는 말에 한표를 던집니다. 한 달이 넘도록 떨어지지 않는 감기 덕분에 ‘나이 들어감’과 ‘병원약 주머니’가 남의 말이 아닌 것 같아 순간 상심하는 때가 있답니다. 그럴 때마다 노트북에 써 놓은 ‘2023 빈공간 생기는 것을 두려워말자’ 라며 저와 손가락을 건 약속의 글을 읽어봅니다. 제주도에서 돌아온 제가 끙끙대는 걸 알고 지인께서 ‘밥’을 준비하셨지요. 차려진 상을 보니, 정말 저만을 위한 ‘보약’처럼, 오랫만에 맛있게 먹었습니다. 봄똥배추에 찹쌀과 검정콩 메주콩이 섞여 윤이 차르르한 찰밥, 먹음직한 크기의 육전과 파무침, 지난 가을에 거둔 무로 만든 생채. 젓가락 둘은 서로 입에 침을 바르며 돌진했지요. 이보다 더 큰 보약이 어디 있을쏘냐. 맛있게 먹었습니다. 더불어 ‘힘듬이 삶의 또 다른 기쁨’이라는 이야기도 훌륭한 반찬이 되었지요. 사람을 한번에 다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저보다 더 많은 삶의 경험과 시간을 소유한 사람의 진심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법도 배워야겠습니다. 오늘은 저도 누군가에게 밥으로 하늘을 보여주고 싶은데, 누가 책방에 오실까요.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시는 박노해시인의 <모내기 밥>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모내기 밥 - 박노해


봄을 타는가보다

며칠째 입맛이 없다

문득 맛난 음식들이 떠오른다


내 인생에 가장 맛난 음식들은

유명한 맛자랑 요리집도 아니고

솜씨 좋은 울 엄니가 차려준 음식도 아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모내기할 때

논두렁가에 둘러앉아 먹던 그 모밥이다


못줄을 잡고 모를 쪄 나르던 어린 나에게도

뜨끈한 고봉밥 한 그릇이 주어지고

감자와 무토막을 숭덩숭덩 썰어넣은

도톰한 서대조림 한 그릇이 돌아왔지

논두렁 가운데 버드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한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한 손에는 살짝 말려 매콤하게 조린

졸깃졸깃한 서대조림 한 마리씩을 들고

웃고 격려하고 일 잘한다고

서로 칭찬하며 함께 먹던 모내기 밥


이 봄에 입맛이 없는 것은

내 입의 문제만이 아니다

절기에 맞춰 함께 땀 흘리던 삶,

서로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고

서로의 재주와 힘을 나눌 수밖에 없던

그 두레노동에서 뿌리 뽑혀

봄이 와도 대지에 맨발을 내리지 못한

시멘트 바닥을 달리는 내 삶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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