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307

2023.2.19 노용무 <나무전봇대>

by 박모니카

성인 1명당 독서율이 채 1권도 되지 않는다는 보도는 이제 놀랄일도 아니지요. 신기한 일은, 책 읽기는 줄어가는데 책 쓰기는 늘어간다는 사회현상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존재를 글로 나타내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나봐요. 저도 그중 하나일테고요. 중요한건 사람의 고유영역이라는 언어의 화려한 방출(글쓰기든 말하기든)은 지속적이고 다양한 언어습득과 자신만의 깊은 성찰이 맞물리는, 그래서 언과 행이 일치되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봐요. 어제는 군산의 지역시인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있었지요. 책방 <봄날의 산책>을 소개할 때, ‘시(poem)를 알리는 곳이 되고 싶다’라고 말하구요. 부족하지만 이렇게 아침편지로라도 매일 시를 소개하고 있어요. 시립도서관에서 3-4월 책방에서 추천하는 도서를 큐레이션 한다고 해서 ‘시인과 시’라는 테마로 생각하고 있어요. 특히 우리 지역의 시인들은 누구일까 궁금하구요, 이번 기회에 더 관심가지고 보려해요. 그중 한 시인의 시집을 읽었는데요, 오랜만에 따뜻한 글 한 줄들이 열 지어 있는 시들을 만났지요. 저는 시 평론가가 아니라서 난해한 글이 섞인 평론은 못하지만 ‘아주 작은 생물, 또는 무생물에서 생명의 호흡을 느끼고 연민의 감성으로 제 맘 속 한구석을 환히 밝혀주는 매력적인 시가 많더군요. 오늘은 그중 하나, 노용무 시인의 <나무 전봇대>를 소개합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나무전봇대 – 노용무


나무전봇대, 세련되지 못한 엉거주춤으로 덕지덕지 새똥으로 얼룩진, 전기공 아저씨 신발 걸린 쇠꼬챙이 상처를 받고, 겹붙이고 덧씌운 광고문구에 세월이 녹아들었다. 살아생전 맛보지 못한 전류를 머금고, 이 동네 저 동네 겹겹이 실어나르는 생기. 누군가에겐 30촉 백열등을 켜주고, 또 누군가에겐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들려주었을 것이다. 매화 피어나는 봄이 오면 나무전봇대, 옛사랑이 그리워 몸속을 흐르는 수액이 돌고, 원형으로 반듯하게 잘려나간 줄기와 가지 사이로 해님을 향한 고개를 들 수 있을 것인가. 땅속에 박은 뿌리 없는 밑둥에 회한이 돌면 지렁이 꿈틀거리는 지맥을 빨아올릴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사람들이 모두 잠든 밤이면 나무전봇대, 줄기를 뻗고 잎을 틔워 몇 백 볼트 전류들 틈새로 정령의 숲속에 살던 기억을 더듬어 그 옛날의 꽃을 피울 것이다.

말랭이마을 골목길 어느 담벼락에 남은 나무전봇대의 흔적. 그 옆 시멘트 전봇대와 동거하고 있군요.^^

<참고로, 책방 아래 월명동에는 일제시대 세워진 나무 전봇대들이 있는데요, 관광코스 zone으로 사람들이 찾고 있는걸 이제 알았답니다. 사진은 제가 직접 찍어서 올려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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